사진=인터넷 캡쳐 |
옌허쎈(沿河?)에서 하루를 묵었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다. 어제 하루 종일 공안국에서 시달린 후유증이 컸나 보다. 밤새 열이 오르고 땀을 흘렸다.
이른 새벽 산책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끝내고 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다.
오늘은 안순(安順)이란 곳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차를 갈아타고 ??으로 갈 참이다. 소수민족 걸라오족 촌에 가기 위해서다.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 종점으로 향했다. 차장들이 목적지 팻말을 흔들며 호객행위를 하는데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요란하다. 묻고 물어서 安順行 버스를 찾아냈다. 16인승으로 유리 창 몇 개는 아예 없다.
이미 차 안에는 만원이었고 통로에 주욱 앉아 있는 손님들까지 합치면 거의 30명 정도나 된다.
게다가 짐 보따리에 강아지, 닭, 오리, 돼지새끼 같은 동물들을 담은 바구니도 보인다. 멍멍, 푸드덕푸드덕, 꽥꽥, 꿀꿀 소리를 내며 동물농장, 동물합창단 연주가 한창이다.
도저히 얹혀 갈 자신이 없어서 내리려고 했더니 차장 아가씨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거기엔 대답도 않고 다음 차가 몇 시에 있느냐고 하니까 오후에 한 대가 더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차장 아가씨는 한 시간쯤 가면 손님들이 많이 내릴 거라며 안심을 시키려 든다. 허기야 이런 경험 처음도 아닌데 참아야지.
염치를 무릅쓰고 배낭을 그들 사이에 쑤셔 넣었다. 겨우 엉덩이 하나 붙일 공간을 만들고 눌러 앉았다.
아침부터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된다. 비좁은 차내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게 질색이다. 연신 카악 칵! 하며 가래침을 뱉어내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60년대도 이러했다. 공중도덕이란 말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지금 중국 변방 지방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나 닮았는지 혀를 차본다.
安順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차장의 말대로 한 시간 쯤 가니까 조그만 시장거리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절반 이상이 내린다. 동물가족들도 모두 내렸다. 차 안이 한결 넓어졌다.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빈 자리가 생겨 기분 좋게 차지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여섯 명의 새 손님이 올라왔다.
그 가운데 10대 청소년으로 보이는 한 녀석이 잽싸게 내 옆자리에 와 앉는다. 큰 여드름이 몇 개 보석처럼 박힌 녀석이다. 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서 이 녀석은 들고 있던 보따리를 풀고 과일을 꺼내먹기 시작한다.
씻지도 않고 껍질을 벗기지도 않은 사과를 자기 한 쪽 옷자락에 쓰윽 쓱 문지르고는 세 개를 먹어 치우더니 이번엔 해바라기씨를 쉬지도 않고 까먹는다.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해바라기씨 까먹는 기술이 보통 아니다. 중국인들에게 해바라기씨가 없었으면 심심해서 다 죽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군것질이다. 내가 자기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을 느꼈는지 한 줌 집어서 건네주며 헤헤 웃음을 날린다.
쎄쎄(??)!
나도 그처럼 흉내를 내보지만 그가 열 알쯤 까먹을 때 나는 겨우 한 개의 껍질을 벗기는 것을 보고 그가 따라 해보라면서 시범을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해서 녀석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그 작은 눈을 있는 대로 치켜 뜨며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말로만 듣던 한국인, TV에서만 보던 한국인을 직접 만나게 되어 기뻐 죽겠다며 얘기를 걸어온다.
이번 가을에 대학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貴陽에 갈 것이고, 그 준비를 위해 학교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럭저럭 지루함을 잊은 채 安順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였다. 성이 ?가라고 밝힌 녀석은 내 배낭을 들어주겠다며 친절을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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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順 종점은 제법 규모가 있었다.
녀석도 나와 방향은 틀리지만 다른 차를 갈아타야 집에 간다고 하며 같이 이정표를 보러 나섰다.
내가 가려는 ??은 오후 3시 30분 출발이었고 녀석이 타려는 차는 10분 간격으로 있었다.
일단 나부터 표를 끊고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몇 시간이나마 정이 들었으니 한 그릇 대접해도 괜찮겠다 싶어 의사를 밝혔더니 괜찮다고 하면서도 따라 나선다.
비교적 조용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2층으로 안내를 한다. 2층에는 우리들 두 사람 외에는 텅텅 비어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천정에는 커다란 선풍기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왠 파리떼가 이리도 많은지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이들을 쫓는 작업부터 해야 했다. 메뉴판을 보니 음식 종류마다 10元을 넘어가는 것이 없다. 8가지 음식을 시켰어도 50元이 안 된다. 녀석은 왠 음식을 이렇게 많이 시켰느냐며 걱정스런 빛이다. 음식마다 양이 얼마나 많은지 한 가지만 갖고도 포식할 정도다. 인심 좋고 물가가 싼 지방임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천천히 음식을 즐긴 후 계산을 위해 밑으로 내려왔다. 배낭을 짊어진 채 왼쪽 바지주머니에서 100元짜리를 꺼내려는데, 한 장이 아니고 두 장이 딸려 나왔다. (평소 습관으로 바지 왼쪽 주머니에는 100元짜리를, 오른쪽 주머니엔 잔돈을 넣고 다닌다. 그런데 당시 오른쪽 주머니에는 10여 元밖에 없었다.) 100元짜리 한 장을 꺼내려던 것이 두 장이 나오는 바람에 왼 손에 한 장을 들고, 오른 손으로 카운터 위에 100元을 내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옆에 서있던 녀석이 잽싸게 내 왼손의 100元짜리를 낚아채고는 뛰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경우를 일컬어 황당하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식당 주인 여자도 이 광경을 보고는 어이없어 한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간다던 녀석이 아니던가. 점심 한 끼 잘 먹이고 헤어질 때는 격려하는 마음으로 100元을 쥐어 줄까? 200元을 쥐어 줄까? 혼자 생각 중에 있던 터였는데, 어째서 녀석은 내 마음도 읽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도심이 발동하여 몹쓸 짓을 저질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배은망덕까지는 안가더라도 고약한 녀석! 간단히 치부하려 해도 영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자꾸만 울적해지는 심사를 지울 길이 없다. 종점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두리번거려 본다.
행여나 뒤늦게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나를 찾지 않을까? 하는 희망감도 지닌 채 말이다. ??까지는 3시간 거리였다. 제법 큰 도시였다. 이번에는 옌허쎈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먼저 공안국을 찾았다.
#늦은 시간에 등기 완료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오후 6시가 지나서였다. 공무원들은 이미 퇴근을 마친 시간일 터인데…. 걱정을 하면서 서둘러 공안국을 찾았다. 공안국은 다행히 걸어서 5분 정도로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정문초소에서 붙잡는다.
나는 외국인으로서 외사과에 외국인 등기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니까 이미 근무시간이 지났다고 하면서도 본관 2층으로 올라가 보라고 한다.
한국 같으면 당직 근무자라도 있을 것인데…… 하며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2층 외사과문을 두드렸다. 안에는 40대 두 사복경관이 잡담을 하며 앉았다가 느닷없는 나의 출현에 놀라는 눈치다.
꾸벅 인사를 하고 외국인임을 밝혔다. 지금 막 이 지방에 도착을 했다. 먼저 등기를 하고 싶다니까, 한 사람이 오늘은 이미 업무가 끝났으니 내일 다시 오라며 손사래를 친다.
맥이 탁 풀렸다. 그러나 다른 묘안이 있을 수 없어 돌아서려고 하는데 두 명 가운데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나이가 나를 불러 세운다. 이미 업무시간은 지났지만 외국인이고 하니까 편리를 봐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기 자리에 앉는데 보니까 과장이다.
그렇다면 외사과에서 제일 높은 양반이 아닌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제 위치에 돌아간 과장은 금새 근엄한 자세로 변해버린다.
순서대로 여권을 펴 보이며 차례로 질문을 퍼붓는다. 중국엔 언제 왔느냐, 무엇하러 중국에 그것도 이곳까지 왔느냐, 이곳에서는 무엇을 할 셈인가. 언제 돌아갈 예정이냐. 30여 분 쯤 주고받은 내용을 주욱 기재한 후 그것을 다시 읽어주면서 내용의 이상유무를 확인까지 한다.
그런 후에 이제 등기는 끝났다. 당신 얘기대로라면 한국의 작가로서 이 지역의 소수민족 걸라오족 촌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취재하고 싶다고 했는데 혼자서 가능한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늘 혼자 다니고 있다. 혼자 다니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느냐고 되묻자, 외국인에 대한 신변 안전문제는 자기들의 책임이라면서 내일 오전에 내 문제를 놓고 회의를 할 것이라고 한다.
(회의는 무슨 회의? 제법 거창하게 나오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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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라오족 촌이 어디쯤에 있는지만 가르쳐주면 혼자서 갈 수 있다고 하니까, 내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어디에다가 전화를 건다. 잠시 후 하오!하오!를 연발 하더니, 지금 이곳 지방 정부 소수민족 관련 부서장과 얘기가 되어 같이 만나기로 했으니 같이 가보자고 한다. 나가기 전에 자신의 성을 黃이라고 밝히는 과장은 마침 저녁시간이 비어 있었는지 직접 나를 안내해 준다.
그가 앞장서서 들어가는 식당은 공안국과 지척간이었다. 2층 한 쪽 방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면서 한 뚱뚱한 사나이가 나온다. 사나이 등 뒤로 보이는 실내 풍경은 한창 마작판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황과장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고 그의 안내를 받아 옆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뚱보사나이는 지방정부 민족담당 과장이라고 했다. 여기 저기 전화를 거는 눈치였고, 그 사이 종업원이 들어와 음식주문을 받는다.
30분도 채 안되어 네 명의 사나이가 차례차례 들어왔다. 실내 분위기가 바뀌면서 중국인들 특유의 떠들썩한 한마당이 되어간다. 한국인이 이 지방에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돌아가며 질문 공세가 시작된다.
한국 TV를 통해 보아 온 한국인, 한국여인, 한국인 습관, 발전한 한국의 경제 등등 궁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모양이다. 처음엔 맥주로 시작하던 술이 빠이주(白酒)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기녀들까지 들어왔는데 전혀 상상도 못한 술판이 되어간다.
더 이상 권하는 술을 받아 마셔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좌중을 둘러보니 공안국 황과장이 보이질 않는다. 화장실에라도 갔는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다시 나타나질 않는다.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그의 행방을 물으니, 그는 원래 술이 약해서 언제든지 중간에 슬쩍 나가는 일이 많다면서 무슨 뜻인지 걱정 말라고만 한다.
나 역시 피곤해서 이 정도로 일어나고 싶다고 하니까 술좌석이 금방 냉랭해진다. 그러고 보니 이들 모두는 나를 위해 술 좌석을 만들었고 주인공인 내가 움직일 조짐을 보이자 마치 동작 그만! 명령이라도 떨어진 듯 조용해진다.
나는 아직 숙소도 정하지 못한 상태다. 대충 인사를 하고 나오려니까 뚱보 사나이가 내 팔을 잡으며 따라 나오라는 시늉을 한다. 갑자기 이 친구가 왜 이러나? 바짝 긴장이 된다. 그러나 상대가 국가 공무원인데 해꼬지를 하겠나 싶어 배낭을 추스른 채 따라나섰다.
문 밖에는 승용차가 한 대 있었는데 우리가 나오자 기사가 뒷문을 열며 예의를 갖춘다. 내가 뒷자석에 자리를 잡자 뚱보사나이는 앞좌석에 앉으며 기사에게 지시를 한다.
불과 1분. 주행거리가 1분 정도밖에 안되는 지점에 호텔이 보이고 우리들은 하차했다. 걸어와도 될 거리를 차를 타고 오다니? 나에게 고물승용차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심사인가.
뚱보가 먼저 프론트에 가더니 방 열쇠를 흔들며 다가 온다. 호텔 등기는 우리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편히 쉬라며 악수를 청한다. 초면에 이렇게 고마운 친구가 있다니.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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