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33화. 아파트 없었으면 어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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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33화. 아파트 없었으면 어찌 살았을까

대전 시민 감소엔 이유가 있다

  • 승인 2018-03-2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모 정부기관의 시민기자 공모에 응모했다. 서류심사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갈이 왔다. 하여 1001번 BRT 버스에 올라 세종시에 갔다. 여기저기 마치 우후죽순처럼 짓는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세종시는 인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대전은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급기야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150만 명마저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설왕설래가 한창인데 객관적으로만 보더라도 이는 세종시가 이른바 '빨대효과'로 말미암아 대전시 인구를 흡수한 때문이다.

즉 아파트의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는 세종시가 대전보다는 투자 내기 투기로서의 자격과 매력까지를 더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심한 말로 시세 차익까지를 노리는 '메뚜기족'들은 이미 세종시로 이전(이사)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대전광역시 인구는 그야말로 욱일승천의 기세인 세종시와는 딴판으로 인구가 더 감소하지 않을까 싶어 우려스러운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금년 1월까지만 해도 150만 1378명이었던 대전시의 인구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149만 9187명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대전시 인구 150만 붕괴 현상은 6대 광역시(대전,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울산)의 상징성까지를 상실하는 듯 하여 대전을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아무튼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짓고 있는 아파트를 보자면 문득 '만약에 아파트가 없었으면 어찌 살았을까?'라는 느낌이 생각의 정류장에 서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단지 형태로 건설된 아파트는 1962년에 준공된 서울의 마포아파트라고 알려져 있다. 마포아파트 이전에도 서울에는 1950년대 후반에 건립된 행촌아파트와 종암아파트, 개명아파트가 있었다.

하지만 단지 형태를 갖추지 못한 단독 건물 형태의 아파트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 잠실을 중심으로 서울의 강남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3~4명의 가족이 살기에 적합한 아파트는 집안에서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처럼 부엌에서 차린 상을 주부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높은 문지방을 넘어서 마당을 거쳐 마루로 올라간 뒤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됐으니 가히 '혁명적 삶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시나브로 중산층의 상징이던 아파트는 1990년대 들어 더욱 크게 늘어났다. 강남 일대의 택지 개발이 끝나자 건설업자들은 강북의 미개발지에도 아파트를 짓는 데 열중했다. 마침맞게 노태우 정권이 민심을 잡으려고 밀어붙인 200만 호 주택 건설 사업도 아파트 비율을 크게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얼마 전 '로또 아파트'로 불린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 개포'(개포주공8단지 재건축) 1순위 청약에 무려 3만여 명이 몰렸다는 뉴스를 봤다. 이날 청약을 받은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평균 25.2대 1의 경쟁률로 1순위 마감됐다고 한다.

또한 최고 경쟁률은 90.7대 1로 전용면적 63㎡ P타입에서 나왔는데 16가구 모집에 1451명이 청약했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의 분양 뉴스가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세인들의 인구에까지 회자된 까닭은 "당첨만 되면 최소 2억~3억 원의 시세 차익이 생길 것"이란 얘기가 돈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돈 내고 돈 먹기의 투전판이라는 생각이 든 건 바로 그래서였다. 모 신문에서는 이를 빗대 <19세 금수저도 당첨된 '로또 아파트'… 정부 조사 착수>라는 타이틀까지 달면서 대서특필했다.

'디에이치자이 개포' 아파트 분양가는 3.3㎡당 4160만 원이며 분양가는 14억 원이라고 했다. 최저 분양가가 9억 8010만 원인데 중도금 집단대출이 막혀있기에 최고 7억 원 이상의 현금이 있어야만 분양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고로 이 아파트를 계약한 사람들은 우리네 '흙수저'와 서민이 아니라, '금수저'와 돈 많은 사람들이었다는 셈법이 금세 드러난다. 이 아파트의 특별공급에 만 19세인 1999년생 청약자가 당첨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금수저 청약'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참으로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2천만 원 축의금, 4천만 원 자동차 예사로 오가는 하도급 뇌물' 사건이 보도되었다. 필자는 조만간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지인들에게 모바일 청첩장의 발송에 이어 종이 청첩장을 쓰면서 문득 축의금의 개념을 떠올려봤다.

재작년에 딸을 먼저 결혼시켰기에 잘 아는 '상식'이 하나 있다. 예식장에선 축의금을 받은 기록 따위의 용도로써 방명록을 준다. 여기에 하객들이 낸 축의금의 액수를 적게 된다. 이는 축의금은 다음에 반드시 갚아야 할 일종의 '부채'라는 생각에 다들 그렇게 철저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론 과도한 금액을 낸 하객이 처음엔 곶감 먹듯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에 상응한 금액을 내야 하는 까닭에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고 현실이다. 최근 대림산업의 대표브랜드인 'e편한세상' 모 단지 신규분양 용도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찾은 적이 있다.

멋진 내부 장식과 기타의 제반 환경 등을 보자니 왜 소비자들이 이른바 '메이커 아파트'를 찾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뉴스 보도의 내용처럼 하도급 업체로부터 수억 원대의 뒷돈을 받는 것이 정례화 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곧바로 가격에 연동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 아니겠는가?

아무리 건설사는 갑(甲)이요 하도급업체는 을(乙)이라지만 이를 빌미로 딸의 입학 선물로 4000만 원이 넘는 외제 자동차를 받고 아들 결혼 축하금으로는 현금 2000만 원을 받았다는 부분에 이르면 이게 과연 정상적인 회사이자 사회인가 싶어 분개의 감도가 활화산, 그 이상으로 치솟았다.

2016년 말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 대상에 이들도 서둘러 추가해야 하는 이유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역대 정부 역시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흔들고자 백약을 동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전연패를 기록하는 원인은 대체 뭘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가구 1주택 보유 외의 주택 소유자에게 세금의 중과(重課)가 빠진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덴마크의 사회주택 정책을 살펴볼 필요성이 요구된다.

주거복지가 잘 발달한 북유럽 국가 가운데서도 양과 질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덴마크 사회주택의 역사는 150년이 넘는다. 1853년 덴마크 노동자들 사이에 콜레라가 창궐해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자, 의사였던 클라우스 에밀 호르네만(1810~1890)이 주거 여건 개선 운동을 벌인 게 덴마크 사회주택의 첫걸음이었다고 한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위에서 '누구나 사는 집'으로 인정받는 덴마크의 사회주택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덴마크에선 사회주택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덴마크 시민이라면 누구나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반 주거라는 인식과 의미가 깔려 있다고 한다.

덴마크의 사회주택이 보편적 주거 형태로 빠르게 확산된 이유는, 다른 나라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세 가지를 과감하게 제거했기 때문이다. 우선 덴마크에선 사회주택의 입주 자격을 없애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가족 단위 입주로 제한되는 일부 큰 규모의 사회주택을 제외하면 규모나 유형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 입주 자격에 소득 기준이 없는 곳은 유럽연합 국가 가운데서도 덴마크가 유일하다.

둘째, 정해진 입주 기간을 없애 주거 안정성을 높였다. 입주자가 원한다면 한번 들어간 사회주택에서 평생 살 수 있다. 이것은 사적 임대주택과 공공 임대주택을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심지어 숨진 뒤에도 함께 산 자식들에게 우선거주권이 부여될 정도다.

셋째, 비용 부담을 없애 가처분 소득을 높였고, 이는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끼쳤다. (2017년 11월 8일자 한겨레 <'싸고 좋은 집'에 사는 데 '자격'이 필요한가요> 참고)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이 그처럼 우뚝하기에 덴마크는 우리나라처럼 부동산에의 욕심과 투기가 아예 생성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를 서둘러 배워야 한다!)

필자는 능력도 없고 돈을 잘 버는 재주도 없다. 때문에 입때껏 분양 아파트에선 살아본 적도, 분양을 받아본 적도 전무하다. 조선시대 세조의 '장자방(한나라 고조의 참모로 '장량'이라고도 함)'이었던 한명회(韓明澮, 1415~1487년)는 국가 원로가 된 뒤 조용히 여생을 보낼 장소로 한강변에서도 가장 풍광이 뛰어난 곳에 정자를 지었다.

이 정자가 압구정(狎鷗亭)이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그 지역이 대한민국 최고 부(富)의 척도가 되고 말았으니 언필칭 희대의 모사(謀士)였던 그의 지혜(?)가 새삼 번뜩인다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공수래공수거다.

그래서 말인데 아파트나 단독주택 역시도 한 채면 충분하다. 신규 분양 아파트는 곧 로또라는 인식의 타파와 이를 좇는 세습(世習)과 시류(時流)의 혁명이 없는 한 강남불패와 세종시로의 대전 시민 이탈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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