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발자취'를 펴낸 손성배 시인 |
손 시인은 배움에 대한 갈망과 한국전쟁의 상처, 40여년의 공직생활 등 일생을 담은 시집 '발자취'를 펴냈다.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써낸 74편의 시는 그의 자서전이나 다름없는 생의 기록이다.
문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손 시인은 지난해서야 평생의 꿈을 실현했다. 충남 보령 청라면에서 태어난 손 시인은 네 살 때 두 누이 옆에서 어깨너머로 한글을 익혔다. 다섯 살 때 한자 교육을 시작해 넉 달 만에 천자문을 뗐다. 언어에 대한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가정환경 때문에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고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으로 남았다.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학비를 내지 못해 두 번이나 상처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공부의 꿈을 접은 채 군에 입대한 손 시인은 한국전쟁 마지막 해에 오른손 중지와 약지, 소지 관절을 크게 다쳤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으나 이때의 부상은 손 시인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부상으로 명예제대 후 공직 입문을 위한 자격시험을 준비했고 1년 후 1등으로 시험을 통과했다.
이후의 삶도 순탄하지는 못했다. 대졸 학력자와 경쟁해야 했던 손 시인은 이후도 계속 배움에 대한 꿈을 가슴 한편에 남겨뒀다. 손 시인은 당시를 떠올리며 "39년의 공직 생활 동안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많았다"며 "대학 간판도 없고, 지연이나 혈연도 없고 지금으로 말하면 '흙수저'였기 때문에 오로지 실력으로 그들과 육박전을 벌여야 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손 시인은 1993년 서기관으로 39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사이 공직에 입문하던 해에 결혼한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넷을 낳아 키웠다. 넉넉지 못했지만 네 아들 모두 국립대를 졸업시키며 배움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자연인이 된 손 시인은 이후 독서와 여행, 등산으로 시간을 보냈다.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고 해마다 아내와 해외여행도 다녔다.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산행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글재주를 놀릴 수 없었던 손 시인은 지난해 초 가족들 앞에서 '시인이 되겠다'고 선언 후 집필에 들어갔다. 같은 해 8월 '화백문학'으로 등단 후 11월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놨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의 생이 담긴 '발자취'를 남긴 것이다. 손 시인의 시집엔 1950년 써놓은 토막글도 시의 형식을 빌려 세상에 공개됐다.
이번 시집은 손 시인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었다. 시인의 큰 아들이 시와 어울리는 사진을 직접 찍어 함께 실었고 큰며느리 지인을 통해 시화도 배치했다. 셋째 아들은 출판사와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손 시인은 "체력도 달리고, 뒤늦게 시집을 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꿈이었기 때문에, 애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손 시인은 이번 시집을 펴내며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우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을 받아들이면서 노력하면 반드시 그 결과가 얻어지는 것이 진리"라며 "절대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에게 부족한 나의 살아온 길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나로서는 더 없이 보람이 되겠다"고 전했다.
손 시인은 끝으로 "노을이 질 무렵,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그 황혼길, 노을 길에 들었다"며 "아름답게 인생을 마감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임효인 기자 baba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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