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리 산성 |
봉우리의 정상부에 동서로 등산로가 난 능선부를 중심으로 약 220m 토축으로 둘러싼 소규모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서고동저의 지세를 이용, 동서가 길어진 장타원형이며 4m 전후의 높이로 편축한 것으로 보이며 동북방 모서리 입구는 능선보다 한 단 높여 방어를 강화한 듯이 보인다. 서쪽으로부터 낮아져 내려온 동벽은 진위천변으로 떨어지는 급경사를 이용했다. 성벽은 삭토한 모습으로 윤곽만 남았다. 북벽과 동벽은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나 마을과 닿은 서쪽과 남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동쪽으로 약간 기운 정상의 성 내부는 현재 순흥안씨 가문의 묘들이 모두 점령하여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다만 이삼백 년 묵은 엄나무 고목들과 해마다 동제를 지낸다는 제단이 있을 뿐이다. 북쪽, 서쪽, 남쪽 능선 입구로 드나들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그 중 주 통로는 남 능선이었던 것 같다. 백제시대 성으로 추정한다.
산성은 비록 규모가 작고 낮지만 주변의 전망이 막힘이 없어 육지로는 서쪽 무성산, 자미산, 비파산은 물론 남쪽 안성천으로부터 진위천 입구 기산리, 덕목리 등의 산성, 동으로는 팽성의 농성, 북으로는 진위천 상류 독산성까지도 모두 보인다. 진위천 내륙으로 진입하는 수로변에 위치해서 이들 성들과 더불어 내륙으로 들어가는 수로 및 육로에 대한 협력 방어에서 대단히 중요한 몫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환과 평택 평야는 말할 것도 없고 맑은 날은 사산성의 직산과 성환, 성거산, 서운산, 흑성산이 있는 차령산맥까지도 관망된다.
백봉리 산성과 진위천 |
사방에서 특히 남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진위천에 떠 있는 낮으막하고 작은 동산처럼 보인다. 넓은 들판에 엎어놓은 대접 같다. 광활한 평택 들을 가로지르는 파란 하천과 머리 위 푸른 하늘이 맞닿은 사이에 납작 엎드려 거북이 한 마리가 물을 찾아 들어가는 듯한 경치가 무척 평화롭고 여유롭다.
성 남쪽 기백 미터에 옛날 청북 어연에서 백봉을 거쳐 팽성으로 오가던 나룻터가 남았다. 갱골나루(갯골나루?)란 토속적 이름이 구수하다. 교통이 발달치 않았고 방조제 시설들이 들어서기 전까지 소금과 새우젓 등을 실은 어염배들이 무시로 드나들었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의 눈속에 옛날이 잔잔히 잠겼다. 배를 타고 돈벌러 떠나고 성공해 돌아오는 이들의 발걸음하며 팽성장, 안중장을 떠돌아다니던 장똘뱅이들의 발걸음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 그처럼 좋은 일들만 있었겠는가. 애써 지어 놓은 곡식들을 강탈당해 내보내던 일제시대의 아픔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 들려주려 하지 않는다.
이제는 배가 머물던 나루턱 낚시꾼들의 더러운 찌꺼기들만 어지럽고 건너편 발전소의 거대한 굴뚝이 탁한 물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을 뿐이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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