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까다로운 리듬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혁명적인 작품이다. 처녀를 제물로 바친다는 원시적인 주제에 예측가능함을 뛰어넘는 투박한 타악기 음향과 리듬의 불규칙성이 특징이다. 비록 충격적 리듬이 부여하는 강렬한 인상을 노련하게 처리하는 기량은 다소 부족했지만, 김형수의 안정적인 지휘로 오케스트라는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흐름을 견고하게 만들어갔다. 더욱이 밋밋해 보이던 봄의 제전 에너지를 정확한 시점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한 순간은 유벨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역량이 한층 성장했음을 입증한 지점이었다. 각론은 미흡했어도 총론의 그림이 제대로 나왔고, 음들이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제대로 들려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봄의 제전은 성공적인 연주였다. 단지 음악과 아무 연관 없던 영상 위에 서사적인 흐름에 맞춰 적절한 해설이 들어갔다면 오히려 소리와 이야기를 아우른 진지한 감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어진 봄의 전령, 제피로스는 봄의 제전 에필로그 같은 효과를 낳았다. 스트라빈스키와 작곡가 김권섭의 음악적 감성이 강렬한 타악기 울림과 역동적인 트레몰로 주법을 통해 이어졌다. 때로 부드러운 미풍이 플루트 음색으로, 폭풍우를 몰고오는 강력한 바람의 힘은 현의 연속성과 급작스런 중단이 야기한 긴장감을 통해 전달됐다. 앞으로 발레 음악이나 다른 종합예술의 배경음악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음악적 역량을 갖춘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유벨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기교적으로 어려운 현대음악을 통해 현 상태를 적나라하게 펼쳐 오히려 미래지향적인 도전에 자신감을 갖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알고 있는 역량의 부족함을 적극성과 결기로 맞서 음악을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예술로 만든 것은 가장 큰 소득이 될 것이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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