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혜원의 귀향은 연어의 회귀나 돌아온 탕자와 다릅니다. 그녀는 아직 젊고, 자신의 삶을 허랑방탕하지 않았습니다. 혜원은 도시의 삶과 어른 되기에 좌절한 상태입니다. 영화는 공간과 장소가 두드러지지만, 그보다 더 깊은 물음은 성인으로의 입사의식과 관련됩니다. 즉 시간에 대한 것입니다. 직장과 결혼. 혜원의 좌절은 이 시대 많은 젊은이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분명한데 답은 쉽지 않습니다. 이 영화도 답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영화는 휴식과 성찰의 공간을 마련합니다. 시골은 적적함으로 가득합니다. 북적이는 도시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하지만 심심하고 재미없는 시골에서 그녀는 관계 안으로 회복됩니다. 소비되고, 경쟁하며, 철저히 개인으로 고립되는 도시와 달리 귀향한 그녀는 자연, 사물, 사람들 속 존재가 됩니다. 때로 성가시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관계 속 존재감은 서서히 그녀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과거이자 미래인 어머니와 만납니다. 남편을 잃고 어린 딸을 길러온 어른 여자 어머니의 삶을 통해 미래의 시간으로 진입할 지혜와 용기를 얻습니다.
시골도 도시 못지않은 모순과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삶의 현실에 지친 젊은 혜원에게 밝고 빛나는 자연과 사람살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제철 음식들의 향연이기도 한 이 작품은 고픈 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도 달래줍니다. 고단한 청춘들이 삶의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어른으로 서는 일은 인생의 가장 어려운 숙제입니다. 또한 그것은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스스로의 몫이기도 합니다.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만든 임순례 감독은 따뜻한 시선으로, 상처 입은 젊은이의 시간을 치유와 회복의 작은 숲에 데려갑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옵니다. 춘분 날 아침 눈이 내리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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