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근길에 문득 예전에 즐겨듣던 힙합 음악이 떠올랐다. 하나하나 곱씹으며 추억에 잠기니, 오랜만에 힙합이란 장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축하 공연으로 슈프림팀(Supreme Team)이 무대에 올랐는데, 한창 힙합에 미쳐있을 시기였기 때문에 꿈에 그리던 아티스트의 공연을 직접 목격하고 까무러칠 정도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힙합이란 장르는 마니아들이 듣는 비주류 음악이란 느낌이 강해 슈프림팀(Supreme Team)에 대한 호응이 크지 않아 일당백을 자처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뒤 여름, 무려 음악 방송에 출연해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고 대중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순조로운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언더 힙합 리스너들은 ‘대중의 힙합화’ 같은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2012년엔 힙합을 주제로 한 경연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가 등장해 또 한 번 힙합 ‘씬’을 뒤흔들었고, 방송사 특유의 편집과 유례없는 힙합 경연으로 대중의 관심이 높아져 매해 새로운 시즌을 준비할 정도였다. 더 콰이엇(The Quiett), 매드 크라운(Mad Clown) 등 ‘아는 사람만 알았던’ 유명 래퍼들은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만의 아티스트가 아니게 되었으며, 인기에 힘입어 수많은 파생 프로그램도 나왔다.
그러나 ‘씬(scene)’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단순한 대중화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힙합’이란 장르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스웩(swag), 디스(disrespect) 등이 전부인 것처럼 내보내는 것을 불편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힙합의 유래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1980년대 미국,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평화 연설이 2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인종 차별을 겪고 있는 흑인들은 오랜 시간 억압받아온 감정을 표출해 하나의 거대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힙합에서 아티스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깊이 다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많은 래퍼들이 자신의 희로애락을 가사에 고스란히 옮긴다. 과거나 현재나 그 점은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음악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다. 힙합에 대한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비트와 가사가 끝없이 쏟아지던 때와는 차이가 있다.
당연할 수도 있지만, 10년간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한 가지 느낀 점은 이 ‘씬’도 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어떤 기준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지만 화나(FANA)가 ‘그 날이 오면’에서 바랐던 ‘그 날’은 ‘가족계획’에서 말했듯 10년이 지났어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더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라던 ‘그 날’은 지금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흐름 탓인지 아니면 천재적인 뮤지션들의 번영기가 지났기 때문인지, 지금의 인스턴트식 음악을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