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화장실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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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화장실 도덕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승인 2018-03-20 08:00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송지연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은 똥 싸는 순간에도 짤막한 교훈에 축약된 인생 정답을 읽도록 종용한다. 한 뼘짜리 좁은 공간에서 가장 동물적으로 혼자인 시간조차 자신의 사회적 쓸모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라 한다. 화장실 문짝 따위가 도덕적 인격을 위해 가져야 할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가르친다. 우상의 메모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야 안심하고 똥을 싸는 문화인 것이다.

쓰레기를 휴지통에 넣으라는 말은 약과다. 종교, 철학, 정치, 예술 등 분야를 막론한 위대한 성현들의 오래된 가르침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 인터넷에 떠도는 자기계발류 문구를 대충 Ctrl+C/V 했을 것으로 보이는 - 어쭙잖은 인생론 메시지가 눈앞에 얼쩡거린다. 엉덩이를 까고 원시로 돌아간 채로 한 번은 보고야 마는 화장실 명언, 때론 명언도 아닌 명언의 복제품들은 똥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서 개똥철학이 맞는 걸까.

똥과 도덕을 좁은 공간에 밀어넣고 똥 싸는 순간조차 무슨 도덕적 인격의 고양을 위한 메시지를 읽어야만 한다는 건 일차적으로는 공중도덕을 안 지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려나. 원조 헬조선론이라 해도 좋을 이어령의 저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는 '공중도덕의 제로지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인의 도덕심이 발휘되는 공간은 '가정'의 세계와 '거리'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란 어디까지나 울타리 안의 아는 사람끼리 요구되는 예의이다. 일단 거리에 나서면 낯선 사람 간에 야만과 무례의 싸움이 벌어지곤 하는데, 그는 이를 "친지의 모럴은 발달해 있지만 공중의 모럴은 메말라 있다"고 표현한다.

아니면 우리가 도덕에 대해 서로 지적하고 감시하는 말만이 무성한 강박적 환경에서 살아감을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공공기관 화장실의 단골 스티커는 '청렴'이다. 한국학을 연구한 일본인 학자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국이 도덕 지향적인 나라라고 주장한다. 또한 도덕 지향적인 것과 실제로 도덕적인 것은 다르다고 구별한다. 한국사회는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운동선수나 대중가수가 성공을 하면, 기부를 해서 도덕성을 쟁취해야 인정 받는다. 그에 의하면 "말이야말로 한국인이 믿는 최강의 질서"라니, 한국의 공중화장실은 바로 그 '도덕적 말'이 어지럽게 널린 욕구 배설의 공간인 셈이다. 실제로 화장실 문과 벽에는 낙서로 된 백분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 모든 '화장실 도덕' 난장은 도덕을 똥보다 못하게 여기거나 똥 싸기의 수단으로 취급하기에 만들어진 현상인지도 모른다. 똥 싸는 시간을 심심하게 보내지 않도록 돕는 도구로서의 도덕인 것이다. 물론 잘 싸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화장실에서까지 삶의 목표와 좋은 품성과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과연 잘 싸는/사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화장실용 도덕은 물을 내리고 문을 닫는 순간 간편하게 뒤처리될 뿐인데.

똥 싸는 시간도 가치 있게 써야 한다는 효율성에의 극단적 추구가 드러내는 이 냄새나는 코미디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대출, 도박, 성매매, 장기매매를 알선하는 광고 명함들이 화장실 바닥에 함께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1000만 원 즉시 입금! 안전 보장! 전화하세요!

우리나라 공중화장실마다 설치된 일종의 위선적 배변훈련 프로그램이야말로 불필요한 몰래카메라이자 방치된 판옵티콘이다. 아무도 실천하지 않는 천박한 도덕의 현장, 도덕을 욕망하기만 하는 공중의 모럴은 이토록 얄팍하고 불안하다.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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