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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커피를 처음 경험한 때가 아마도 중학생이었던 1970년대 초반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당시 경험한 커피는 소위 미군부대의 PX에서 어찌 어찌 흘러나온 병에 들은 미국산 가루커피였습니다. 미국에서 생산된 가루커피는 지금은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아직도 팔리고 있는 'M00 하우스 커피'라는 상표였습니다. 그리고 이 커피가 우리나라에서 일반 대중이 볼 수 있는 유일한 커피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M00 하우스 커피'는 커피를 의미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 커피를 중학생 시절 처음으로 맛을 보았습니다. 당시 기말고사 시험을 앞두고 커피를 마시면 졸리지 않다는 말을 듣고, 졸음을 쫒기 위해 커피를 마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 생애 첫 커피의 맛은 설탕을 잔뜩 넣어서 단맛이 강하고 동시에 묘한 쓴맛이 난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졸리는 잠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내게 첫 커피 맛은 '맛없는 쓴맛'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커피는 어른들이나 마시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나와는 상관없는 마실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와는 무관했던 커피가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 대학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 말 소위 대학문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청바지, 통기타, 그리고 다방과 커피를 꼽고 싶습니다. 청바지나 통기타는 이미 1970년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라고 누구나가 동의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방과 커피는 당시 소위 말하는 다방문화와 함께 대학문화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 앞에는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다방이 즐비했고, 각 대학을 상징하는 유명한 다방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방에는 언제나 대학생들로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나 역시 하루에도 여러 번 다방을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다방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또 수업 중간의 비는 시간을 다방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다방에서 가장 저렴한 음료가 커피였기에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곤 했습니다.
당시 다방에서 마시는 커피는 가정에서 마시는 커피와는 조금 다른 커피였습니다. 당시 다방에서는 일반 가정에서 마시는 병에 든 가루커피가 아니고 원두커피라고는 하지만 원두커피가 아닌, 아무튼 유리로 된 주전자에서 항상 끓고 있는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 커피의 맛은 약간 쓴맛과 함께 고무 타는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가끔 신문에 다방에서 커피에 담배가루를 섞어 팔다가 적발되는 기사가 나곤했는데, 아마도 탄내가 나던 것이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당시에도 커피의 맛을 '맛있다' 또는 '좋다'라고 평가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커피 맛을 느끼게 된 것은 독일 유학시절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 와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독일 사람들은 가루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흔히 마시는 가루커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 사람들은 이 가루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고, 독일에서 커피라고 하면 원두를 갈아서 종이 필터에 넣고 끓는 물을 내려 마시는 원두커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원두를 갈아서 물을 끓여 손수 내리는 수제 커피보다는 커피 머신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시는 원두커피의 맛은 정말 한국에서 맛보았던 커피와는 전혀 다른 환상의 맛이었습니다.
나는 처음 유학을 가서 커피 머신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해 깔때기 모양의 기구와 종이 필터를 구입해서 손수 수제커피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커피 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마신 원두커피의 맛은 내게는 두 번의 맛으로 기억됩니다. 그 첫 번째 맛은 바로 원두커피 가루를 필터에 담아서 내려오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향기의 맛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맛은 그 내려온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는 맛입니다. 물론 손수 내리는 수제 커피는 커피 머신을 사용해서 내리는 커피보다도 더 향이 진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다 아실 것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종이 필터에 담긴 커피가 뜨거운 물과 섞이면서 나오는 커피 향을 손수 내리는 과정에서 코로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점점 커피의 맛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학을 가서 처음 맛을 본 커피의 맛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독일에 가면 처음 맛본 원두커피인 D사의 커피를 반드시 사게 됩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커피원두를 구입할 수 있지만, 내게는 이 D사의 커피가 제일 맛있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커피에 대한 편견일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에 D사의 커피가 수입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매장에서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다른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 커피의 맛도 D사의 커피 만큼 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니 이 커피 맛에 대한 생각은 편견일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의 맛은 정말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가 있습니다. 바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커피'입니다. 혼자서 맛을 음미하며 마시는 커피는 어쩌면 나 혼자만을 위한 커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커피는 커피의 맛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커피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끔은 내 자신을 위한 혼자 마시는 커피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내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 만족하기도 위해 마시는 한 잔의 나를 위한 커피가 내게 행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만을 위한 커피 한 잔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한 잔의 커피는 내게 더 많은 것을 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커피는 커피의 맛에 더 많은 다양한 맛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다양한 커피의 맛은 혼자 마시는 나만의 커피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맛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커피의 맛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혼자만이 살 수 없고 언제나 누구와 함께 더불어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커피 맛을 생각하다보니,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커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라는 것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누가되었던 함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또 감사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공유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기회를 함께 마시는 커피가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주말 가까운 사람들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함께 하는 경험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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