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소감을 들려주신다면.
▲이제 그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확고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에게 다가가고 소통하지 않는 국민운동단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자유총연맹은 자유민주주의와 통일안보의 소중함을 논리와 사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된 것은 반성하고 잘한 것은 당당히 내세워야 한다.
이제 저는 한국자유총연맹이 오로지 국민과 국가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자유를 가져왔고, 진보는 평등을 추구한다. 해석해보면 커피와 설탕처럼 보완재로서 자유민주주의 없이는 평등한 사회도 없을 것이다. 평등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안 되면 우리 대한민국호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20년 동안 유지해왔던 양대 진영 논리보다는 진정으로 다수의 국민들이 바라는, 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자유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양극화가 심하고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불만 속에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 기득권이 나눠주면 안정적으로 순항하면서 갈 수 있다. 진영 논리 속에서 이익을 위해 투쟁이 극심화되면 국가와 국민 안보가 걱정된다. 대한민국 배가 순항할 수 있도록 배의 평형추 역할을 해서 안정을 찾고 힘을 북돋워줘야 한다. 확고한 의식을 재정립하고, 논리를 개발하고, 정신적으로 무장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50여 회원들과 함께 지난 1월 4일 현충원을 참배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자고 다짐했다. 이 시대는 한국자유총연맹이 국민대통합을 위해 헌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로 하나 된 통일 대한민국건설의 꿈을 이룰 때까지 결코 쉬어서는 안된다. 그 꿈을 달성할 때까지 와신상담의 자세로 인내하며 대국민 의식함양에 앞장설 것을 약속드린다.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의 포성 속에서도 국민들에게 피와 땀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연설했다.
이런 냉엄한 현실 속에서 자유총연맹 대전시지부와 5개 구 지회 동지들에게 단합과 헌신을 요구했다.
지난 60년 동안 해 왔던 것처럼 올해도 자유와 안보의 파수꾼으로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다.
▲요즘 제 주변에서 많은 지인 분들이, 할 일이 산적한 자유총연맹 대전시지부회장을 맡게 된 것을 염려하시면서 매우 궁금하게 생각하신다. 그 답을 말씀드리면 저는 학창시절에 정말 반장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당시엔 담임 선생님이 거의 지명했으니까 초·중·고교 때 단 한 번도 부반장도 못해봤다. 대학 재학 중 군 입대를 했는데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에 차출됐다. 청와대 경복궁 내에서 근무했는데 구타가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이때 하도 고되게 훈련을 받다 보니 세상 밖에 나오면 모진 풍파를 다 이겨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은근과 끈기와 인내심이 생겼다. 군대 제대 후에 대학에 복학했지만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취직이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 대기업 공채시험을 봐 합격했지만 고졸 사원의 한계를 느껴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과 대표 선거일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 대표 선거에 출마했는데 당선됐다. 어릴 때부터 꿈에 그리던 반장을 3년간이나 맡으면서 총학생회 학도호국단 임원도 하게 됐다. 그동안 우수장학생과 근로장학생,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하며 학교생활을 열심히 한 결과 학교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전교생 중 두 명에 뽑혀 학교 추천으로 원하는 직장을 골라갈 수 있는 특혜를 입었다. 이때 건교부 산하 한국도로공사에 입사했다. 그 이후부터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제 가슴의 소리를 듣는 버릇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리자 ‘원래 인생은 외로운 선택의 연속이다’라고 생각했다. 저를 회장으로 추대해주신 존경하는 대전지역사회 단체장님들과 자유총연맹 정광영 부총재님, 16개 시도지부 회장님, 그리고 제가 섬겨야 하는 5개 구 지회장님과 회원 동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저는 대전시 대흥동에서 태어나 대흥초등학교와 한밭중학교, 충남고등학교,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도로공사에 입사 후 30년 동안 대부분 대전·충남에서 근무하면서 대전의 물과 공기를 마시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전 토박이이다. 도로공사에서 명예퇴직한 이후에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관리회사를 운영하면서 충남고등학교 총동창회 수석부회장을 거쳐 계룡시 장애인협회 이사와 대전경찰청 보안협력위원장을 맡고 있고, 충남 아산에 있는 아이지종합건설 주식회사 대표로 활동 중이다.
한국도로공사에 입사한 후 남다른 노력과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 정신으로 혁신과 정의로운 길을 가기 위해 애썼다. 권위주의가 팽배하고 군대문화가 판치던 시대에 민주화 바람에 힘입어 노조의 핵심 간부가 됐다. 1988년 민주화의 바람이 불 당시 노동조합 초대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조직의 적폐인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했다. 저는 ‘혁신’과 ‘개선’, ‘개혁’의 유전자를 타고 났다. 점진적으로 참여해 은근과 끈기로 진보해 나가는 기질이 있다. 대전 충청지역 노조위원장을 직선으로 6년간 역임했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이들도 커가면서 결단을 내려야만 할 시점이 찾아왔다. 권위주의 타파와 자기 불만 표출 도구로 갈등이 상당히 심각할 때 전체 조합원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을 도맡아 하다가 선택과 집중의 시기에 다시 공부해 과장으로 승진했고, 과장에서 팀장, 지사장을 거쳐 명예퇴직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열심히 근무한 덕에 톨게이트 관리회사와 건설회사를 운영하게 됐다. 분양도 잘됐고 안정이 되면서 사회단체 활동에 눈을 돌리게 됐다. 직장인으로 퇴직할 때가 인생의 1기라면 75세까지 하는 경제활동이 인생의 2기이고, 그 이후는 은퇴하는 3기라고 생각한다.
-박 회장님은 메디컬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시라고 들었다.
▲저는 충남대학교병원 MHS(메디컬 아너소사이어티) 캠페인에 동참한 뒤 병원에 5000 만 원을 쾌척하고 병원 발전을 기원하고 있다. 대전에 있는 환자들이 서울까지 굳이 가지 않아도 충남대학병원에서 우수 의료진에 의해 치료를 받을 수 있길 소망하는 마음에서 이 캠페인 확산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이 프로그램에 약 2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널리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떤가.
▲북한이탈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유사시에 남북 대립관계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우호적인 존재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자유총연맹에서 보안협력위원장을 맡아 하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을 돕기 시작한 게 오늘 자유총연맹 대전시지회장으로 추대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앞으로 북한이탈주민 자녀들과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양대 세력이 되어 우리나라에 비우호적인 존재로 자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적극적인 보호와 관리로 감당해야 될 숙제라고 생각한다.
저는 현재 대전경찰청 보안협력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경찰청 보안협력위원회는 국내에 있는 약 3만 여명의 북한 이탈 주민을 지원해주는 단체이다. 얼마 전 북한이탈주민 약 800명 정도가 영국에 가서 난민신청을 하다가 거절당하자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는 방송을 접한 적이 있다. 방송에 나온 탈북민들은 한국서 멸시와 소외로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제는 우리가 20년 동안 대립해왔던 양대 진영의 논리보다는 진정으로 국민들이 바라는, 보다 편안하고, 보다 행복한 자유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시대는 한국자유총연맹에게 국민대통합을 위해 헌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로 하나 된 통일 대한민국건설의 꿈을 이룰 때까지 결코 쉬어서는 안된다. 그 꿈을 달성할 때까지 와신상담의 자세로 인내하며 대국민 의식함양에 앞장설 것이다. 지난 60년 동안 해 왔던 것처럼 올해도 자유와 안보의 파수꾼으로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 것을 다짐 드린다.
대담, 정리 한성일 제2사회부 부국장 hansung007@
▲1956년 대전 출생. 한밭중학교, 충남고등학교, 충남대 산림자원학과 졸업.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 제대. 한국도로공사 지사장 역임, 플러스게이트 대표, 충남고등학교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계룡시 장애인협의회 이사, 대전경찰청보안협력위원장, 퍼스트빌/ 레자미빌 대표,(주)아이지종합건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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