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김숨 작가의 장편소설 '한 명'을 계기로 위안부 피해자를 지역화해서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명'은 비록 소설의 형식이지만, 김숨 작가는 피해자들의 증언록을 조합하고 인용하는 방식으로 또다른 증언록을 완성했다. 바늘공장에서 3년만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인 반장 말에 속아 만주 위안소로 끌려온 충남 논산의 여성부터 비단공장에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선 소녀까지 참혹한 피해가 담겨 있다. 내 이웃 할머니 20만여명이 소녀 시절 사기를 당하거나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 책 속에서 절절하게 전해진다. 소설이면서 소설이지만은 않은 책을 읽으며 다음 페이지 넘기기가 두려웠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지역 이슈로 이해하는 또 다른 소재는 '망향의 동산'이 있다. 망향의 동산은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에 있는데 일제침략으로 망국의 서러움 속에 타국서 숨진 재일동포 등 해외 한인들의 안식을 위해 세운 곳이다. 일본, 중국, 대만, 브라질 등 각국의 동포 영령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타계한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40여 위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더불어 천안 망향의 동산은 위안부의 비극을 상징하는 기억의 장소가 되고 있다.
특히, 망향의 동산에 요시다세이지가 1984년 세운 '일본인의 사죄비'가 있다.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임무를 맡았던 인물로 1983년 출간한 회고록 '나의 전쟁범죄'에서 일제강점기 자신이 제주도 여자들을 사냥하듯 강제 연행해 위안부로 끌고 갔다고 고백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아사히 신문은 16차례 강제징용 관련 보도를 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자위대의 전직 자위관을 시켜 '위령비'라고 쓰인 비석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훼손한 사건도 있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첫 증언으로 세상이 알려진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 피해 신고자 239명 중 현재 30여 명 생존해 있다. 사과하지 않는 일본과 아버지의 증언을 부정하는 아들까지 위안부 범죄의 상처가 우리지역에 녹아 있는 셈이다. 장편소설 '한 명'에서 그렸든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한 명만 남은 때까지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리고 신고된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도 남지 않았을 때 우리의 소녀가 당했던 학대와 인권침해 범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해 11월 충남도 마지막 생존자였던 위안부 피해자 이기정 할머니가 별세하셨다.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을 남기고 사과를 요구하는 의무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