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글 라이팅? 행복한 글쓰기] 7. 기행문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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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글 라이팅? 행복한 글쓰기] 7. 기행문 쓰기

한소민 프리랜서방송작가, 대전시민대학 글쓰기강사

  • 승인 2018-03-11 10:5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여행
게티 이미지 뱅크
우리는 늘 멋진 여행을 꿈꿉니다.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어 하지요. 내가 사는 작고 좁은 틀을 벗어나 좀 더 확 트인 곳에서 세상과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순간들을 소망하곤 합니다. 여행이라는 말은 고생을 뜻하는 라틴어 Travail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언뜻 들으면 모순되는 말 같지만, 산고(産苦)의 아픔으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 여행이라는 힘든 경험을 통해 나를 새롭게 변화 시킬 수도 있으니, 딱 맞는 어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여행을 한 후에 쓰는 글, 기행문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볼까요?

1. 기행문의 성격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 기행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따라 이동하면서 쓴 글이기에 움직이는 동선인 여정(旅程)도 중요합니다. 견문과 감상, 여정. 이렇게 세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되는 글이지요. 그 중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당연히 감상입니다. 여행 중에 스친 정서나 감흥을 표현하는 것이 기행문의 핵심이니까요.

2. 기행문을 쓰는 방법



기행문을 쓰는 방법은 여행 전과 여행 중의 경험, 그리고 여행 하고 난 후의 정리와 감상.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지요. 처음 시작에서는 여행의 목적이나 떠나기 전의 설렘과 기대가 나타나야 합니다. 또, 본문에는 그날의 날씨나 일정과 함께 본격적인 여행지 소개가 있어야 하는데요, 주변 경치나 그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여행 하면서 경험한 것과 느낀 것 등이 해당 되겠지요. 마지막으로는 전체적인 감상이나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 왔을 때의 감흥 등을 쓰면서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틀은 형식적인 것이어서, 그냥 다 버리고 자유롭게 쓰고 싶은 대로 써도 좋습니다. 여행을 즐기는 순간순간, 현장에서 살아 움직였던 그 감정만 표현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기행문이 될 수 있습니다.

3. 기행문을 쓰기 위한 자세

여행하는 동안의 빛나는 순간들은 시간과 함께 잊혀져가지만 글로 써 놓으면 두고두고 기억 되지요. 또, 글로 남기기 위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게도 됩니다. 기행문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①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그 순간을 기억한다.

순간순간의 생각과 느낌을 꼼꼼히 적지 않으면 놓치게 됩니다. 늘 작은 메모지를 준비해서 틈틈이 기록해 놓지 않으면 마치 손 안의 모래처럼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라지고 맙니다. 사진을 찍어 간단한 메모까지 해 놓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② 새로 알게 된 것들을 적는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것은 나의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내 생각이나 소견이보고 들은 것을 통해 달라 진 것이 있다면 새롭게 알게 된 것을 적어 보세요.

<…… 떠나자마자 매물도 당금마을에서 하선을 했다. 집들이 색깔이 곱고 예쁘다. 두리번거리며 마을 구경에 나선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유령 도시인가? 이 마을에 내린 사람은 아내와 나, 우리 둘뿐이다. 탄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마을에 내려도 보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해가 안 되어 머리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여튼 구경이나 하자고 발을 뗀다. 제일 먼저 만난 게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나신(裸身) 여인상이다. 무릎을 꿇었는데 만삭이다. 어찌 이런 걸 설치해놨단 말인가? 참으로 남사스럽다. 어쨌든 사진이나 담자며 찰칵 거리며 여인상을 돈다. 어쭈구리 詩비도 있다.



바다를 품은 여인

바라본다/ 떠나간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돌아올 바다를 바라본다/ 함께할 섬의 내일을 바라본다/ 품는다/ 섬의 생명을 품고/ 섬을 찾는 생명을 품는다/ 새 생명 가득한 섬의 내일을 품는다/ 여인은 그렇게/ 매물도의 바다를/ 품는다



시를 읽으며 좋다고 느낀다. 쉽고 깊다. 몸을 받치고 앉은 허벅지에서 모두를 받아낼 튼실함이 보인다. 빵빵한 배에선 당장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양 가슴에 불룩한 젖무덤에선 강한 모성이 읽혀진다. 덤덤한 얼굴에선 '나는 이리 살아가겠노라'는 진득함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저 먼 바다를 향해 무릎을 꿇은 여인이지만 꿈쩍도 않을 굳셈이 느껴진다. 참 좋은 여인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이상해보였던 그 여인이 아니다. 달라졌다. 섬도 바닷물도 집들도 초목도 따라서 정겹다. '섬을 찾는 생명을 품는다'고 하니까 나도 품었을까 하며 만삭의 배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게 된다. 이제는 매력도 있고 친근감도 생겼다. 시 한 수 읽고 나니까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정말 모르면 배워야 한다.……>

- 이승남 (대전시민대학 행복한 글쓰기 수강생), 매물도 섬 여행.

조각상
매물도 바다를 품은 여인 조각상


조각상1
매물도 당금마을
③ 무얼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라는 미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무얼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느꼈느냐가 중요한 것일 테지요. 굳이 거창하고 좋은 곳만이 아니라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일상적인 여행도 좋은 여행입니다. 그 속에서 작고 소소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여행을 없을 겁니다.



<……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장인어른이 계시는 요양병원으로 갔다. 요양병원. 인생의 황혼 길에 거쳐 가는 여행지이자 인생 항로의 마지막 기항지이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은 착잡해진다. 장인어른의 상태는 얼마 전 왔을 때에 비해 많이 좋아보였다. 아직도 혼자서 거동하는 것은 제한되지만, 기력도 좋아 보이고 무엇보다도 기분이 한층 더 밝아 보였다. 준비해 간 용돈을 드리자 장인어른은 더욱 밝아진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 장모님께 드렸다. 비록 몸이 아파 병원에 계시지만 가장으로서 집에 대한 걱정을 늘 하고 계셨다. 그래서 자식, 손자들이 병문안 와서 주는 돈을 꼬박꼬박 모아 장모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동병상련일까? 병석에서도 가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시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짠해졌다.

기다렸다는 듯 장인어른은 어렸을 적 이야기를 꺼내시더니, 이내 노래를 하나 부르시겠단다. 나는 레퍼토리가 자못 궁금해졌다. 지난번에는 '신라의 달밤'과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는데, 이번에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 되었다가 해방을 맞아 돌아오는 동포들의 감격과 희망을 그린 '귀국선'이었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향 산천 찾아서..."

비록 음정과 박자는 들쭉날쭉하고 가끔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장인어른의 표정은 희망의 빛으로 가득 차있었다. 간병인의 말에 의하면 근래에 보행기를 이용한 재활훈련도 열심히 하고, 식사도 곧잘 하신단다. 아마 장인어른은 요양병원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희망에 부풀어 계신 듯했다. 귀국선을 타고 그리운 고향을 찾듯, 휠체어도 보행기를 다 벗어 던지고 두 발로 서서 집으로 걸어오실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당당히 집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오셔서 예전처럼 그 우렁찬 목소리로 자식들을 혼내 주셨으면 좋겠다.

아쉬운 마음으로 요양원을 나서는데 장인어르신이 굳이 배웅을 하시겠다고 나선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소 불안해 보였지만, 보행기에 의지한 채 복도 끝까지 걸어 나와 우리를 배웅해주셨다. 몸도 정신도 건강하시지 않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여전하셨다. ……>

신언필 (대전시민대학 행복한 글쓰기 수강생), 평범하지만 특별한 여행



④ 현장의 느낌이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생생하게 묘사를 한다.

여행하면서 얻은 견문과 감상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세세히 표현해야 합니다. 묘사가 잘 되어야 읽는 사람이 잘 공감할 수 있지요. 우리 시대의 대표 소설가로 손꼽히는 김훈작가는 '자전거 여행'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산하를 누빈 경험을 생생한 묘사로 실감나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안면도는 태안반도의 남쪽으로 길게 뻗은 섬이다. 안면도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온 자전거는 섬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649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섬의 남쪽 끝인 고남리 젓개포구로 간다.

안면교를 넘어서면 창기리, 정당리, 승언리, 중장리 마을의 산과 들에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소나무 숲을 만나면 자전거는 포장도로를 버리고 숲길로 들어선다. 안면도의 소나무 숲은 마을의 숲이다. 대문 밖이 숲이고 밭이 끝나는 곳이 숲이고, 울타리 너머가 숲이다. 숲의 신성은 멀고 우뚝한 것이 아니라 가깝고 친밀해서 사람의 숨결을 따라 몸속으로 스미는 것임을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알겠다.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50년에서 90년 된, 혈통 좋은 소나무들이 우뚝우뚝하고 듬성듬성하게 들어서 있다. ……

봄의 안면도에서는 겨울을 다 지난 후에도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곧고, 높고, 힘센 나무들이 자존(自尊)의 거리를 정확히 유지하면서 숲을 이루어, 나무들의 개별성은 숲의 전체성 속에 파묻히지 않는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은 붉고 곧은 기둥을 높이 올려가다가 맨 꼭대기에서만 가지가 퍼지고 잎이 돋는다. 아무데서나 가지를 뻗어 늘어뜨리지 않는다. 그 소나무들은 음풍농월의 충동과는 거리가 멀다. 소나무들은 경건하고도 단정하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은 밑둥의 껍질은 검고 두껍지만, 사람의 키를 넘는 높이부터는 껍질이 얇아져서 종이 한 장을 바른 정도이고, 거기서부터 나무의 붉은색이 드러난다. 이 붉은색은 빛을 내뿜는 색이 아니라 빛을 나무의 안쪽으로 끌어들여 숨기려는 붉은색이다. 그래서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앞을 바라보면 붉은 숲이고, 위를 쳐다보면 푸른 숲이다.

봄의 소나무 숲은 다른 활엽수림의 신록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들떠있지도 않다. 봄의 소나무 숲은 겨울을 견뎌낸 그 완강한 푸르름으로 진중하고도 깊게 푸르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에게는 안면송(安眠松)이라는 고유 명사가 있다.>



- 김훈, [자전거 여행]



⑤ 자기만의 느낌

여행지에서 깨달은 것을 쓸 때 정보나 사실을 보고 들은 데서 오는 단순한 깨달음 보다는 그 속에서 자기만의 생각을 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깊게 사유해야 겠지요.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 부분에만 해당되는 작은 경험에서 보편적인 큰 깨달음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 훨씬 더 근사한 기행문이 될 것입니다.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유랑하며 쓴 사진에세이 '다른 길'에서는 시인의 눈에 비친 아시아 곳곳의 모습이 시인의 깊고 따뜻한 사유와 함께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산과 물의 나라 라오스. 메콩강 줄기가 여명의 숨을 쉬면 짙은 운무 속에 푸르스름한 산맥이 장엄하게 일어선다. 고르게 가난하기에 오히려 아름다운 풍경과 순박한 심성을 지켜온 나라, 오렌지 빛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탁밧 행렬이 불자들의 가슴에 아침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나라. 그러나 라오스는 세계 최대의 불발탄이 '전쟁의 슬픔'으로 묻혀 있는 대지이기도 하다. 라오스의 고산족들은 오늘도 가파른 화전 밭에 서서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농지를 맨손으로 넓혀가고 있다. 자신의 길을 걷다가 한계에 부딪혀 돌아서고 싶을 때, 꾸역꾸역 너의 지경地境을 넓혀가라고 격려하는 저 높은 곳의 농부들을 만나 다시 살아갈 힘을 건네받기를. ……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고산족 마을의 아침은 어머니가 피우는 불빛으로부터 시작한다.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밥을 짓기 시작하면 가족들이 깨어나 모여들어 언 몸을 녹인다. 햇살이 길게 비추면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고 담소를 나눈 뒤 일터로 간다. 사랑은 자신을 불사르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빛이 있다. 순수한 헌신만큼 맑은 빛이 있다.>



- 박노해, [다른 길]



니체는 여행하는 사람들을 다섯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여행했지만 아무 것도 못 보는 사람, 나가서도 자신만 보는 사람, 세상을 관찰하며 무언가를 체험하는 사람, 체험한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최상급자로 자신이 체험 한 것을 생활에 반영하는 사람. 나는 어떤 여행자인가요? 여행을 다녀와서 기행문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분명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최상급자 일겁니다. 글을 쓰는 활동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정리하게 되고, 새로운 나를 꿈꾸게 될 테니까요. 여행의 추억을 담은 글을 쓰는 건 정말 소중한 작업입니다. 참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한소민 프리랜서방송작가, 대전시민대학 글쓰기강사

한소민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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