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은 기독교가 넓게 퍼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베리아 반도는 물론이고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까지 이교도인 이슬람교도들이 장악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과 다른 기독교 국가들이 성지 탈환을 목적으로 십자군 전쟁을 불사하였지만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동방세계에서 기독교를 신봉하는 '프레스터 요한의 왕국'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필로히스토리아' |
오늘 '행복찾기'를 시작하면서 프레스터 존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도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환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허구', '환상'과 같은 말은 이성적이지 않고 다분히 감성적이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마치 2010년에 개봉된 영화 '인셉션(Inception)'에서 꿈과 현실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도 흡사합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꿈과 현실의 모호함과 꿈을 통해 전개되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서 어떤 해석을 할 수 있는 지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환상'의 경우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것이 '허구'나 '환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때때로 그것을 현실에서 '사실' 또는 '실체'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실이 아님'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와 같은 '허구'와 '환상'을 사실로 인지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마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느끼는 자기합리화를 추구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고 하면,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이나 이성은 때때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만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이기 때문에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먼저 이해하고 인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아무리 이성적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이성과 합리성만으로 이해하고 판단한다고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적'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결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나 실현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 꿈을 꾸기도 하고, 우리에게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희망에 대해서 꿈을 꾸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꿈이라는 것이 잠을 자면서 일종의 무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제어할 수 없는 자의식의 연장이라고 한다면 꿈과 현실에 있어서의 경계점이 다소 불분명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꿈이라는 것은 생리적으로 잠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희망하고 갈망하고 원하는 것을 꿈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꿈이 없는 인간은 어찌 보면 존재의 이유의 한 부분이 없는 인간일 수 있습니다. 꿈이 없는 것은 희망이 없는 것이고, 희망이 없는 것은 미래가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미래가 없는 인간은 삶의 의지와 목표가 없는 인간일 수 있습니다. 꿈은 희망을 의미하고 희망은 미래를 위한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꿈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사실이 아닌 허구를 생각하기도 하고 꿈이 실현되는 환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허구와 환상은 현실도 아니고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허구와 환상은 다르게 생각하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정 부분 거치는 과정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꿈이 이루어졌다는 가정 하에서 꾸는 허구나 환상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동력을 가져다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중세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있었던 프레스터 존의 존재는 그것이 비록 사실이 아닌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당시의 억눌리고 고통 받던 유럽인의 정신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이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군가 어디에서 자신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곳이었던 프레스터 존은 그래서 전설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비록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희망이 될 수 있는 이 프레스터 존의 존재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상이 환상 속에만 존재하고 그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 덧없는 환상이고 허구가 될 뿐입니다. 꿈이 실현되지 않고 꿈으로만 끝나 버린다면 우리는 허무한 삶을 산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꿈은 그 꿈을 발전시켜 하나의 이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과 과정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고 달성될 경우를 상상하고 또 다른 꿈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우리는 꿈과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이상을 정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이들 사이의 경계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 사이의 경계는 현실에서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꾸고 희망을 갖는 과정에서 이들의 경계 속에서 우리의 꿈과 희망을 함몰시켜 버리는 실수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 다시 주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꿈과 이상,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허구와 환상을 한번 구분 지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꿈이었고 환상이었는지를 스스로 깨닫는 계기를 갖으려고 합니다. 내게 또 다른 프레스터 존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또 다른 프레스터 존이 현실을 망각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구분해 보려고 합니다. 그 속에서 현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인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프레스터 존은 과연 무엇일까요?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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