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28. 노인 방치 정책을 고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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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28. 노인 방치 정책을 고집한다면

야마토마치처럼 찾아가는 의료서비스 벤치마킹하라

  • 승인 2018-03-0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올부터 '6학년'으로 진급하였다. 하지만 기쁘기는커녕 상처만 덕지덕지 붙은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치아가 너무도 부실해졌다. 그래서 씹는 기능을 상실했다.

우리말은 단어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씹다'는 것 역시도 사람이나 동물이 음식 따위를 입에 넣고 윗니와 아랫니를 움직여 잘게 자르거나 부드럽게 갈다가 우선한다.

다음으론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의도적으로 꼬집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다' 외에도 '다른 사람이 한 말의 뜻을 곰곰이 여러 번 생각하다'까지 동원된다. 하여간 이 '씹다'는 마치 욕을 하는 듯 싶어 어감(語感)이 안 좋다. 하여 이후론 '10다'라고 기술할 터다.

치아가 시원찮은 까닭에 두 달 전부터 치과를 출입하고 있다. 그런데 65세가 아니 된 까닭에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단다. 따라서 가뜩이나 궁핍한 형편이 더욱 쪼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방치했다간 영원히 죽만 먹다 죽을 게 뻔하다. 따라서 거액의 치료비 부담 발생으로 인해 전전긍긍의 형국이다. 어쨌거나 어서 치료가 끝나 뭐든 먹을 수 있는 '10다'의 호시절로 회귀하고픈 마음 간절하다. 이빨이 튼튼한 악어와 큰 물고기도 한입에 꿀꺽 먹어치우는 왜가리까지 자못 부러움은 물론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태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40만 명 아래로 '추락'하면서 정부의 출산정책에 빨간 불이 켜졌다. 6.25 한국전쟁 중에도 한 해 50만 명의 아기가 출생했다는데 출생아가 이처럼 급격하게 감소한 원인은 왜일까?

여기엔 다양한 원인과 이유가 동원되는데 이를 다 거론한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다만 대략 피력하자면, 현재의 젊은이들은 진작 정부의 무능을 간파했다는 사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우리사회가 금수저와 은수저, 흙수저로 계층화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울러 있는 자들은 치부(致富)에 더욱 혈안이 되어 메뚜기처럼 부동산 투기에 몰려다니면서 집 한 칸 없는 서민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파렴치의 작태까지를 여실히 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징치는커녕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람도 모자라, 심지어 독재자의 딸까지 대통령으로 뽑아주는 국민들의 '미개함'에 그만 혀를 내둘렀다.

뿐이던가… 설상가상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 국가와 정부가 유족과 국민을 허투루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는 급기야 "헬조선"이라는 구호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취업의 어려움을 시작으로, 아예 결혼의 기피 등 후유증이 만연해졌다.

하늘을 봐야 별도 딸 수 있을 텐데 가까스로 취직을 했다손 쳐도 결혼하여 임신을 하게 되면 유능한 재원(才媛)조차 '경단녀'로 전락하는 현실의 심각성 역시 한국의 신생아 규모 곤두박질의 단초로 부상한 지 오래다.

상황이 이처럼 '초(超) 저출산'의 길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탁상행정과 마치 보라장기(긴 시간 동안 장기판만 들여다보고 빨리 두지 않는 장기)인 양 명료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큰일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하락과는 반대로 고령화의 속도가 가파르다는 점은 실로 우려스런 현실이다. UN에서 정한 '고령화사회'의 정의는 65세 이상 노인비율이 전체인구 대비 7% 이상일 때 발효한다.

또한 14% 이상일 경우엔 '고령사회', 20% 이상일 경우에는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에 노인인구비율이 7.2%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지난해 말에는 14.2%로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리고 2026년에는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고 한다. 노인인구의 증가는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와는 처한 상황이 사뭇 다르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고령화사회(7%)'에서 '고령사회(14%)'로 전환되는 기간이 일본 24년, 미국 71년, 스웨덴 85년, 프랑스 115년인 것으로 조사된 반면, 우리나라는 17년으로 고령화속도가 단연 세계 최고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가 진행되면 공급보다는 수요가 훨씬 많아져 개인이나 국가도 노인복지문제를 감당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노인인구의 급증은 사회가 이들을 부양해야 할 경제적 부담을 자녀세대에 증가시켜 세대 간 불평등을 초래한다.

신생아 수는 감소하는 반면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는 급증함에 따라 앞으로 적은 숫자의 젊은이들이 많은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비극을 초래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들여다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스웨덴의 복지는 스웨덴의 복지를 시행하기 위한 단체와 법에 의해 시행된다. 높은 복지와 함께 높은 세금 부담률이 특징이며 학교, 보육, 건강, 연금, 노인 복지, 사회복지 사업 등을 국가가 거의 무상 제공하고 있다.

고령자에 대한 복지는 스웨덴 지방 자치단체가 관할하고 있는데 양로원과 자택 요양까지 포함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차별이 낮은가 하면 퇴직자에 대해서도 벌이가 없어 생활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1년 동안 월급을 주고 있는데, 6개월 치 월급을 한 번에 준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지켰다. 덕분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생산시설의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더불어 전후 미국에 이어 두 번째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으며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민연금제도와 의료보험제도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김동선 지음 / 궁리 출판 / 2004년)을 보면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발간된 지가 14년이 지났음에도 미래의 현실까지 꿰뚫는 저자의 놀라운 시선이 번뜩이는 수작(手作)이다.

이 책은 일본의 노인 문제와 복지 제도를 통해 한국의 노인복지 정책까지 조망하고 있다. '야마토마치'는 도쿄에서 서북 방향으로 250킬로미터이며 신칸센으로 1시간 40분 거리에 있다.

이곳에서는 오래 전에 도입된 '재택 개호 시스템' 덕분에 노인이 혼자거나 노부부가 사는 세대, 또는 자녀와 동거를 하더라도 맞벌이 등으로 낮 동안 노인을 돌볼 사람이 없는 가정에 간호사나 홈헬퍼가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덕분에 자리에 드러누운 노인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은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고령화 문제는 단순히 고령자 수가 늘어난다는 숫자의 개념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산, 교육, 환경, 문화 등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웅크리고 있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가 언필칭 유교국가이며 '동방예의지국'이라고도 하는데 그러나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1위라는 부끄러운 사실의 부각이 도드라진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노인의 부양을 사회보다는 각 가정에서 알아서 했다. 즉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유교의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노인들도 딱히 자녀들에게 큰 걸 바라지 않았다.

다만 과거에는 자녀가 성공하면 자신의 노후가 편안하다는 식의 고루한 편견으로 자녀에게 모든 것을 헌신적으로 투자한 경우가 많았다. 요즘도 문제가 되고 있는 자녀의 사교육비 급증도 그런 맥락이다.

부모는 오로지 자식이 잘 사는 게 보람이라며 심지어 자녀의 결혼 후 집장만에까지 돈을 다 보탰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세상도 변화하여 설령 자식이 잘되었더라도 사라진 부모의 봉양문화로 인해 자식은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게 시대적 대세로 굳어졌다. 그러다보니 노인 빈곤율이 높아졌고 끝없는 가난과 노후에 오는 질병, 쇠약한 몸으로 일도 못하니 돈을 벌수도 없고, 벌어도 얼마 되지 않으니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고 벗어나질 못한다.

그래서 이는 고스란히 노인의 자살로 이어지는 임계점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부메랑의 사슬'은 결국 젊은이들까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공고화하게 되면서 심지어 결혼 자체마저 거부하는 현실로까지 확장되었음을 간파하게 만든다.

일본의 '네타키리(ねたきり, 누워서 꼼짝 못하는 노인)'나 우리나라의 자녀마저 방관하는 늙고 병든 독거노인 역시 오십보백보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의 야마토마치처럼 찾아가는 의료서비스의 착근이 우리에겐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야마토마치와 같은 스웨덴 식 복지정책이 정립되었더라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이 월등한 원인 또한 소멸되었을 거라는 지적이다. 2017년 8월 31일 MBC-TV 'MBC스페셜'에서도 '건강할 권리를 찾아서'로 방송된 바 있는 일본 노인 복지의 모델 야마토마치 마을 병원이 일군 기적은 이제라도 우리 역시 벤치마킹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본다.

아기가 웃는 소리는 사랑이며 희망이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의 제고는 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어젠다(agenda)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 손자와 손녀를 보듬는 손길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라고 한다면 더욱 좋다.

그러나 지금처럼 만약에 '네타키리' 노인마저 방치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종국엔 *노노개호(老老介護)조차 힘든 사달을 빚을 수도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노노개호(老老介護) = 개호(介護)는 간호, 병수발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즉, '노노개호'란 노인이 노인을 수발하고 돌본다는 뜻이다.

2005년 11월 후쿠이현 오오노시에 있는 화장장 소각로에서 2명의 유해가 발견된다.

이 화장장은 30년 넘게 사용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유해에서 어렵게 찾아낸 치아의 치과기록 등을 살펴본 결과, 이 유해의 주인은 80세 남성과 82세의 그의 아내로 확인됐다.

30년 넘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이곳에서 이들은 어떻게 유해로 발견됐을까?

화장장 부근엔 승용차 한 대가 시동이 걸린 채 놓여있었다.

차 안에서 클래식 음악이 큰 소리로 흘러나오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한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갔다.

차 안에는 주유소 영수증 뒷면에, 이들 부부가 집을 나온 뒤 취했던 행동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오후 4시 30분, 차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8시, 아내와 함께 집을 나왔다'

'차로 형제의 집과 추억의 장소를 돌아본 뒤 화장장에 도착했다'

'아내는 아무런 말 없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

'숯, 땔감으로 화장을 준비한다'

'오전 0시 45분에 점화한다. 안녕'

경찰은 노부부가 화장터에서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또 이들이 로프를 이용해 문을 닫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부부가 소각로에 나란히 누워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 2017.10.01. 중앙일보 -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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