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내용과 형식을 뛰어넘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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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내용과 형식을 뛰어넘는 변화

  • 승인 2018-03-10 17:40
  • 신문게재 2018-03-06 23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정용도
정용도 미술비평가
칸트는 형식 없는 내용은 공허하고, 내용 없는 형식은 천박하다고 했다. 달리 말해 형식과 내용의 조합은 아날로그 시대의 우리 삶을 공간적으로 이해 가능하게 해주는 근본적인 지식의 틀이었다. 두 조합은 시각예술작품의 이미지들을 비롯한 인간의 문화적 생산물들이 상징적 질서를 획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상징적 질서에 내재된 '재현'은 우리 삶의 모습과 비슷한 상황의 발견을 마치 우리 상상력의 최종목표로 간주하는 듯 보였다. 재현적 생산물은 물질적인 삶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게 해주고, 추상적인 이미지는 정신적인 회상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재현은 공간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로 변화와 운동의 과정 속에 존재하는 시간의 결절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만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21세기 기술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공간적인 성찰과 역사적 비전이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삶은 더 이상 수직과 수평의 구조에 의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이 융합돼 사물들의 잠재된 운동성을 불러내는 사물인터넷(IOT),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과정을 모방한 인공지능(AI)의 감성지식 축적 기술은 우리를 현대적 애니미즘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예술과 기술, 예술과 대중문화, 기술적 가능성과 물리적 한계의 경계가 소멸돼 가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무시돼 왔던 고대적인 환상의 실현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정의해주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논리적 세계가 아니라 상상력과 진보성이 초래하는 혁명적 변화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변화'를 믿음에 근거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현재를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일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의 인물들은 사소한 결정으로 인해 거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반대로 누군가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순간, 그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이 세상의 불확실성에 맡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삶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4차 산업으로의 기술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융합의 개념이 있고, 융합에는 공간적인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결합되는 개체들의 성질을 변화시켜 새로운 차원으로 개방시키는 융합은 시간의 차원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다차원의 현실이다. 변화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아니라 속도를 통해 이해되는 시간의 속성이다. 속도가 증가할수록 변화의 에너지는 점점 더 증폭되고 강력해진다. 공간적 획일성에서 벗어나 시간적의 다차원성으로 확장돼 온 인간의 삶은 기술적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사이보그적인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삶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만 한다.





정용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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