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시내에서 볼 일이 있어서 나가는 길에 그 친구가 마침 시간이 된다고 해서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만나서 식사를 하려고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현재 외국유학 중인 그 친구의 막내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의 전화내용을 들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딸이 아직 명확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아빠와 상의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대답과 조언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나는 그 친구를 질책했습니다. '어떻게 도움과 조언을 청하는 딸에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친구는 약간 당황한 듯, '그럼 어떤 말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친구를 나무란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이 일견 당연하고 타당한 것 같지만, 곰곰 따져보면 참 무책임한 말이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어떻게 준비하고 시작하고 진행해야 하는 것인지를 대부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하지만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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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을 하다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내게 그 일이 주어지지 않아서 할 수 있음에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가장 좋은 경우는 할 수 있는 일을 잘 처리하는 것임에도 말입니다. 만약 '할 수 있는 일'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버릴 경우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해 버리게 되면, 그 일을 해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고스란히 책임져야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에는 '재미있는 일'과 '재미없는 일'이 있습니다. 일하는 것이 재미있는 경우는 아마도 극히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일이 즐겁고 재미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많지는 않지만, 하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다면 그 일은 일을 하는 내내 힘이 들지도 않고 또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은 일하는 것이 재미있지 않고, 일 자체도 그렇게 즐겁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정말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은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재미있는 일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더 없는 행복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재미있는 일을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일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살면서 하는 일은 대부분 해야만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 재미도 없는 그런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대부분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해야만 하고 재미도 없는 그런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흔히 '힘들고 괴롭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즐겨라'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힘들고 괴롭고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을 즐기기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그런 일을 해야만 한다면 어떻게든 빨리 일을 처리해서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즐기라'는 말이 무책임하고 덧없는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존재의 이유가 일을 하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던지 해야만 한다면, 적어도 일을 분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해야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누고, '재미있는 일과 재미없는 일'을 분류하고,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을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을 나누고 정리하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의 공집합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분류를 하게 되면 다른 한편으로 '하기는 싫지만 해야만 하는 재미없는 일'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는 싫지만 해야만 하는 재미없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기는 싫지만 해야만 하는 재미없는 일'도 해야만 한다면,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 가를 고민하고 일을 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이 비록 힘들고 괴롭기는 하겠지만 그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했습니다. 신입생들이 새로운 희망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자신의 목표와 희망,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시작해야할 때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자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찾아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하나씩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는 내 주변의 일들을 정리하려고 분류해 보려고 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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