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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를 찾았다. '2.28 민주운동 기념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연대와 협력의 힘'을 강조하며, "용기 있는 외침이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고 전했다. 2.28 민주운동 기념식은 2월 6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첫 정부 주관 기념식'으로 진행됐다. 민주화운동으로는 5번째 국가기념일이다.
그러나 다른 민주화운동과 달리 '2.28 민주운동'은 그간 익히 알려지지 않았다. 시민 A씨는 "잘 알지 못한다"며 "2월 28일이라 3.1운동과 관련된 사건인 줄 알았다"고 했다. 다른 시민들도 기념식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반응이다.
2.28 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대구 경북고에서 처음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항쟁과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특히 학생들이 주도해 시작된 '학생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승만 정권 당시 학생들은 '학도호국단'에 소속됐다. 학생들은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부가 요구하는 관제 시위나 관료 행차에 동원됐다. 또한, 대통령 자녀는 시험도 보지 않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등의 부정부패로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1960년 2월 28일 오후 1시, 대구 경북고 8백여 명의 학생들은 결의문을 읽고 거리로 나섰다.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원을 정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결연한 구호를 외쳤다. 일부 학생들이 감금되거나 연행됐지만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대전에서도 학생들의 민주운동이 이어졌다. 같은 해 3월 8일, 대전고 학생 천여 명은 야당 부통령 후보 강연회가 열리는 대전공설운동장으로 달렸다. 무장 경관의 진압으로 학생 50여 명이 연행됐다. 이틀 후인 10일에는 대전상고(현 우송고) 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이처럼 학생들이 시작한 민주화 요구는 4.19 혁명의 씨앗이 되어 전국으로 확산 됐고, 억압적인 독재를 마감하는 계기가 됐다.
학생들의 '용기 있는 외침'인 '2.28 민주운동',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조경석 기자 some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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