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음악평론가. 백석문화대 교수) |
리게티(G. Ligeti 1923-2006)는 리듬, 선율, 화성이라는 전통적인 음악 구성요소를 해체하고 음향 그 자체의 울림을 음악적 공간으로 환원시킨 작곡가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의미의 론타노에서 소리는 악기 고유의 음색이 지닌 특성을 이용한 멀고 가까운 음향덩어리로 흐른다. 기존의 리게티 작품보다 화성적 울림이 강하게 융합돼있어 듣기 거북한 날카로운 울림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낯선 음악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익숙한 음악만 연주할 수는 없다. 사실 50여년 전 만들어진 론타노조차 과거의 음악이다. 이제 우리는 새롭고 현대적인 위대한 작품을 듣고 향유할 권리가 있다. 대전시향의 론타노는 아직 특유의 그 느낌을 완벽히 들려주지는 못했어도 최소한 그 맛을 알아가는 관객에게 새로운 차원의 음악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어진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에서 헝가리 출신 첼리스트 이슈트반 바르다이(I. Vardai)의 개성있는 음악해석은 신선한 감동이었다. 바르다이의 첼로 음색에서 찾을 수 있는 대조적인 소리층, 즉 건조하면서도 비올라적인 독특한 울림과 완성도 높은 테크닉에 기초한 강렬하고 심오한 소리는 여느 낭만적인 드보르자크 연주방식과는 분명 차별화된 연주였다.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우아하게 접근한 바르다이를 대전시향이 좀 더 세련되게 받쳐주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익숙한 곡일수록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정교하게 조율할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하다.
마지막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대전시향의 주 프로그램이었다. 19세기 말 영국음악의 부흥을 이끈 엘가의 대표작을 통해 상대적으로 독일 작곡가에 비해 덜 알려진 영국의 대규모 관현악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그 자체가 대전관객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변주곡마다 선율의 의미를 최대한 부각하려는 노력 역시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결과적으로 이번 연주는 익숙함 속에 낯섦을 추구하려는 대전시향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것, 동시에 안전한 작품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리의 세계를 들려주려는 적극적인 행보를 할 때가 됐음을 시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오지희 음악평론가· 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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