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기념관. |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에 다니다 서울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4월 1일 4000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일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7년 형을 받고 옥중에서 투쟁하다 1920년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유관순 열사 생가지는 봉화지와 함께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230호로 지정됐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만세운동 당시 일본관헌들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되고 빈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91년 12월 30일 복원했다. 생가 옆에는 박화성이 시를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있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은 기미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유관순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 2003년 4월 1일 개관했다.
또 추모각, 초혼묘, 동상 및 순국자 추모각, 기념공원 등을 갖추고 있다.
기념관은 유관순열사의 수형자기록표, 호적등본, 재판기록문 등 관련 전시물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한 디오라마, 재판과정을 담은 매직비전, 열사의 생애를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하는 등 열사의 출생에서 순국까지의 일대기를 전시물과 영상, 다양한 체험을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방원기 기자 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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