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동명 작품을 모티프로 한 것으로, 15년 만에 재상영되었습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원작 소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영화화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그림이 정확히 언제 그려졌고, 작품 속 인물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그리트는 가난한 화가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 소녀지만, 실제로 베르메르는 화가일 뿐 아니라 화상(?商)으로서 평생을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영화 역시 그림과 원작 소설을 소재로 한 허구입니다.
영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그림이 그려지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스크린이라는 큰 프레임 속에 완성된 회화 작품의 작은 프레임이 담기게 됩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회화 프레임 밖으로 배제되었던 그림 속 인물의 이야기를 스크린 안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즉 정지된 회화 작품에 시간과 이야기를 덧입혀 움직이는 그림으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프레임 속 프레임이면서, 한편으로 프레임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상상력과 고증, 재현이 활용되었습니다.
영화는 가난한 도자공예가의 딸인 한 소녀가 주인집 화가에 의해 아름다운 그림 속 여인이 되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그린 그림을 바라보는 그리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비록 주인 마님의 것이지만 진주 귀걸이를 한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빛나는 존재로 거듭나는지를 목도합니다. 그녀는 그 순간 의미의 영역에 초대된 것입니다.
영화에는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아슬아슬한 감정적 동요, 푸줏간집 청년과 그리트의 풋풋한 데이트, 그리고 물의 나라 네덜란드의 풍경들이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데뷔 초 스칼렛 요한슨의 빛나는 매력도 이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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