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은 짧지만 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그에게 2008년 10월 4일 한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스스로 가래를 뱉지 못하는 상황에서 호흡곤란, 산소부족으로 의식을 잃은 것이다. 응급조치로 다음날 새벽 의식을 회복했지만 이후 가래 뽑아내는 일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식사량도 줄었고 밥을 먹게 되는 날이면 1시간 이상씩 시간이 걸렸다. 소화도 잘 되지 않았고 배변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갈수록 줄어들어 인간으로서 최소한 지키고 싶었던 일까지 다른 이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봐. 자네들에게 이런 모습까지 보이게 됐네. 이제는 약도 혼자 못 먹는 나약한 사람일세. 정말 미안허이…."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을 지어주는 것만 같아 마음 아파했다. 투병보다 더 힘든 것은 주변 사람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의 십자가'였다. 갈수록 십자가의 무게는 더해왔다. 육체적, 정신적, 심적 고통이 깊어졌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고통은 '고독'이었다. 그는 옆을 지키던 고찬근 신부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자네는 고독해 보았는가. 나는 요즘 정말 힘든 고독을 느끼고 있네. 86년 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절대고독이라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는데도 모두가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모든 것이 끊어져 나가고 아주 깜깜한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느낌일세."
추기경은 그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목숨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어떠한 의학적 행위도 거부한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십자가를 안고 죽음의 섭리에 순종했다.
2009년 2월 16일. 향년 87세의 일기로 사제 김수환은 평생 양 어깨에 짊어지고 왔던 십자가를 내려놓는다. 입원한 지 159일만의 일이었다.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그 사랑을 이제 나누자고 항상 당부한 추기경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선종 18분 후인 오후 6시 30분 서울대교구의 공식 발표가 있었고, 8시 30분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앞에서 허영엽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신부가 국내외 언론사 기자단 100여명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김 추기경이 남긴 마지막 말이 전해진다.
"추기경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병원에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늘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김 추기경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입니다."
이 시대를 걸어가는 모든 노인들에게 추기경의 마지막 간 길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서우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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