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워싱톤 D.C.의 조지타운 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첫발을 디뎠을 때, 앞으로의 1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답을 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가장 의미있는 1년을 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구상해 보았다.
그러나 곧 그러한 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나는 깨달았다.
마탁소 그가 말했지.
하루의 일과표를 지키기 위해서는 온 지구가 협조해야 한다고…….
그렇다. 계획을 세우기에 1년은 너무나 길었다.
나는 하루에 집중을 하였다.
가장 후회없고 알차고 보람있는, 그러면서도 꿈과 같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려면 어떤 스케쥴이어야 할까.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꿈을 꾸기 시작했다.
6시. 일어난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우선 즐기리라. 햇살의 가닥을 세어보며 그동안 눈을 환히 밝혀주던 햇살에 감사하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나의 무신경을 탓하며 비쳐드는 햇살을 손으로 움켜쥐고 키스를 하리라.
그리고 창문을 열리라.
달고 단 산소. 나무의 선물.
집 앞의 삼나무가 선사하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다시 그 향기에 취해보리라.
저 소리는 무엇인가.
투명하게 지저귀는 저 깨끗한 새소리. 나는 나의 귀를 축복하는 저 소리에 귀를 씻어 보리라.
그리고 아내가 끓여주는 아침의 홍차.
반드시 영국 찻잔에 담아달라고 부탁하리라.
홍차와 함께 나누는 아내와의 아침인사. 아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겠지.
너무도 만족한다. 그들은 학교에 가야 하지만, 나는 오늘도 자유인.
식탁위에 놓여 있는 워싱톤 포스트지 위에 따스한 아침 햇살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
신문을 읽는다. 그리고 아침 식사.
메뉴는 아내의 자유와 아내의 상상과 아내의 꿈이 버무려져 있는 것.
감히 침범할 것이 아니다.
아침 식사 후에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어야 하나?
학교에 갈 일이 없는 날이면 친구를 만난다?
색소폰도 연습을 해야지.
여기서 부터가 문제였다.
상상을 해보지만, 고백컨대 하루 단 24시간의 계획도 짜임새 있게 세우지를 못했다. 그리고 실천하지도 못했다. 허무했다.
그렇게 자유로운 시간을 탐했건만, 막상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모르다니...
매일 매일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나는 진정으로 절실히 느꼈다. 직업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가장 멋있는 하루를 상상하면서 나는 상상의 맛을 알기 시작했다.
생각을 집중했다. 수많은 상상을 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 해야 할 일을 상상해 보거나, 장 차관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았다. 삼성회장이 되었다고 상상해보았다.
우리 역사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우리가 왜 그리도 못 살았던가도 상상해 보았다.
우리의 미래도 상상해 보았다.
우리나라가 잘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진지하게 오랫동안 상상해 보았다.
작은 상상도 했다.
아내가 되어 아내의 입장을 상상해 보았다. 아내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좋은 남편이었나?
어제 만나 나눈 친구와의 대화를 다시 음미하며 상상해 보았다. 가장 멋진 나의 대응과 그의 반응을 가정하며 상상해 보았다.
내가 흑인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하는 상상, 반대로 백인이었다면?
내가 미국사람이었다면 하는 상상도 수없이 해 보았다.
상상을 떠나 공상도 해 보았다.
식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다시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를 계획한다면?
화석연료에서부터 지구의 멸망을 구하려면?
진정한 녹색 혁명의 완성이란?
상상은 즐거운 것이었다. 상상은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로운 상상의 생산성.
다양한 상상이 많은 국민들이야말로 그만큼의 다양한 철학이 있는 국민들이고, 또 그만큼의 비전과 창의적인 미래로 이어진다고 상상해 보았다.
선진국의 지표라는? 보헤미안 지수.
자유롭고 분방한 상상이 많은 이들 보헤미안들이 바로 이 나라를 창의적인 국가로 만들어 낸다고 하지 않던가.
그 상상을 꿈으로 엮어 보았다.
꿈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운명이 시키는 바인지 모른다.
그러나 꿈을 이루고 못 이루고를 떠나 꾸어 보지도 못하는가.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을 꾸며 나는 세상의 수많은 일을 해보았다.
대한민국의 역사도 다시 써보았다.
세종대왕도 안중근 의사도 김구 선생도 모두 꿈속에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보다 풍요롭고 보다 품격있는 나라를 꿈꾸어 보았다.
인생의 수많은 경우를 상상하며 나는 꿈을 꾸고 그것을 노트에 적어 보았다.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도 다시 개최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작은 소리로 불러 보았다.
마탁소, 주곤중, 마순원, 노명찬, 후루마쓰 마사히로와 그의 딸 나리코...
상상속의 나의 분신들이었다.
그들과의 꿈속의 대화.
「아웃터넷」…….
(끝)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