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옥 전 국회의원 |
'명절 연휴 동안 이어지는 대가 없는 노동, 이것은 여성 인권의 문제이며 며느리도 친정엄마와 함께 밥 먹을 권리가 있다, 내 엄마를 두고 남편 엄마 일을 도와야 하는 며느리의 역할, 남자들이 먹는 동안 음식 시중들다가 식은 밥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며느리의 비애를 끊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 는 내용이었다.
명절 문화를 한순간에 바꿀 수도 없는 건데, 오죽하면 저런 글을 올렸을까 싶은 생각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명절마다 반복되는 며느리들의 스트레스 명절 증후군. 그 원인은 명절을 치러내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명절 일이 온통 "며느리의 몫"이며 고부간의 문제, 즉, 집안 내 여성들끼리의 갈등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음식준비부터 손님맞이까지 시댁에서 명절을 치러내는 일은 여전히 며느리의 몫이다.
며칠 전부터 와서 음식을 준비하고 명절 후에도 뒷정리 때문에 친정으로 향하지 못하는 맏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뒷정리 때문에 며느리를 친정에 보내지 못하는 시어머니나 뒤늦게 선물하나 사들고 온 손아랫동서, 명절 아침 일찍 친정으로 온 시누이가 아닌, 명절 가사를 며느리의 의무로 규정해온 모든 가족들이라는 것을 남자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것일까.
모르는 이들, 혹은 모른 척 하는 이들은 남녀가 평등한 명절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이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며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은 전통을 부정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남성의 가족에 집중된 이러한 명절 문화가 정말 우리 고유의 전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남성중심의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가 시작된 것은 고작 200~300년 전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성사를 쉽게 풀어쓴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이순구 著)'을 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지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의 가족은 남성중심이 아니었다. 결혼은 두 가문의 만남이었으며 남편과 아내는 각 가문의 대표였고, 그렇기에 서로 동등한 조력자였다.
18세기까지 이어진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관습에 나타나듯 당시 결혼식을 마친 후 부부는 아내의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남편은 본가와 처가를 오갔다.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닌 장가드는 것이다. 신사임당 역시 결혼 후 20년 가까이 강릉 친정에 머물지 않았던가.
남귀여가혼에서도 나타나듯, 당시 여성 집안의 영향력이 컸으며 아들과 딸의 권리와 의무는 비슷했다.
17세기 조선에서 딸이 친정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혼인해서 남자가 여자 집에 살고 있다 보니 딸과 사위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러다보니 친정부모의 제사를 지내는 조선시대 여자들의 제사에 대한 느낌은 명절을 준비하는 지금 여성들의 마음과는 달랐을 것이다.
제사뿐 아니라 재산상속에서도 아들과 딸의 권리는 동등했다.
세종대왕은 "혹 부모가 죽은 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한 가족이면서 노비와 재산을 모두 가지려는 욕심에서 혼인한 여자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는 것을 꺼리는 자가 있으면 엄히 죄를 주도록 하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지금보다 조선시대가 여성의 인권에서 훨씬 앞서있다 할 만하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이혼율이 증가한다고 한다. 전통에 억눌린 여성의 권리가 명절증후군이라는 후유증을 부르고 그것이 이혼율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청원을 올린 (아마도 젊은)며느리의 주장도 명절을 없애자는 게 아닌 남녀가 평등한 명절, 진짜 전통적인 우리 명절 문화를 찾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캐롤린 엠케는 그의 책 "혐오사회"에서 '어떤 관습이나 제도도 인권을 훼손할 수도 없고 훼손해서도 안 된다'라고 했다. 전통 혹은 관습이라는 명목으로 여성의 인권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얽매고 있었던 명절 문화에 대해 가족과 사회 모두가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박윤옥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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