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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식탐이 많지만 난 요리에는 큰 재주가 없다. 입맛도 시골스러워 집에서 해먹는 건 한정돼 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국, 미역국 등과 야채를 이용한 간단한 요리가 전부다. 라면 수제비도 종종 해먹었으나 밀가루가 장에 좋지 않다는 의사의 조언으로 지금은 아주 가끔 먹는다. 초년의 입맛은 평생을 간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어릴 적 엄마가 해 준 음식이 당긴다.
초겨울 시골 집에서 김장용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를 가져와 냉장고에 가득 넣으면 한 겨울 반찬 걱정은 끝이다. 냉장고를 열어 볼 때마다 흐뭇한 눈으로 그것들을 쓰다듬어 보곤 한다. 떡국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겨울이 오면 떡국떡을 사는 단골 떡집이 있다. 우선 떡국떡을 찻물에 담가놓고 육수를 끓인다.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만든 육수에 떡살을 넣어 어느 정도 익으면 다진 마늘을 넣는다. 떡국이 거의 다 되면 계란을 풀어 넣고 휘휘 저어준다. 마지막으로 깨소금 듬뿍 뿌리고 김을 가위로 잘라 올린다. 난 짠 걸 싫어해서 소금은 따로 넣지 않는다. 육수만으로도 간간하기 때문이다. 아 참, 홍합도 넣으면 정말 맛있다. 반찬은 사곰사곰 익은 배추김치 하나면 된다. 떡국 두 그릇에 김치 한 보시기로 그날 저녁은 거한 만찬인 셈이다.
이제 모든 게 기계화가 된 요즘, 진한 설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사음식도 웬만하면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오고 북새통을 떨던 방앗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설이 오면 시끌벅적한 떡방앗간 풍경이 생각난다. 가래떡 빼러 갈 때 늘 엄마를 따라가곤 했다. 물에 불린 쌀이 쫀득한 가래떡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모습은 어린 나이에 아무리 봐도 신기하기만 했다. 방앗간 주인이 김이 펄펄 나는 가래떡을 일정한 간격으로 끊는 건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옆에서 주인이 잘라주는 떡을 부지런히 양은 대야에 담다가 하나를 집어 내게 먹으라고 건넨다.
가래떡이 살짝 굳으면 간식으로도 그만이다. 조청을 듬뿍 찍어 먹으면 그 맛이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 조청은 식혜물을 가마솥에서 하루종일 주걱으로 저어가며 뭉근히 끓여야 한다. 도 닦듯이 끈기를 요한다. 짙은 갈색으로 굳으면 달콤하고 구수한 조청이 된다. 많이 만들 수 없는 귀한 꿀이기 때문에 엄마는 조그마한 항아리에 담아 찬장 깊은 곳에 숨겨 놓는다. 내 눈에 발견되면 도둑고양이처럼 몰래몰래 훔쳐먹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없는 틈을 타 검지 손가락을 조청 항아리에 쑥 집어넣어 묻힌 조청을 누가 볼세라 재빨리 핥아먹을 때의 스릴이란….
설날 아침이면 으레 엄마가 속상해 하는 일이 있었다. 큰언니는 떡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큰언니는 엄마에게 도시로 일찍 나가 직장에 다니느라 고생해서 늘 맘이 쓰이는 맏딸이었다. 그런 딸이 오랜만에 설에 와서 잘 먹지도 않으니 엄마는 속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명절만 되면 이 세상에 없는 언니 얘기를 한다. 엄마에겐 제일 맘이 걸리는 자식이다. 부모로서 못해 준 것만 생각나는 모양이다. 부모 맘이란 그런 걸까.
즐거운 설이 왔다. 명절은 내겐 포식하는 날이다. 혼자 살며 해먹는 밥이란 사실 그저 그렇다. 간소하기 이를 데 없다. 대개 1식 3찬도 안 된다. 찌개 하나에 구운 김 정도 놓고 먹는다. 설이 다가오면 엄마에게 떡국 노래를 한다. 엄마는 "넌 맨날 밥도 안 먹고 사니?"라며 혀를 끌끌 찬다. 설 아침에 내가 먹는 떡국은 두 그릇은 기본이다. 떡국 수대로 나이를 친다면 난 100살이 훌쩍 넘는다. 아무려면 어떠냐. 나이보다 떡국이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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