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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다르게 살고 싶은 생각은 나 역시도 같았습니다. 미래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20대에 학자의 길을 선택한 이후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최연소 박사학위를 독일에서 받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30대에는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남들 앞에 자랑스럽게 우뚝 서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남들과는 다른 '잘난 놈'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통 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만의 계획을 세웠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당시 내게 '평범한 삶'은 그냥 보통 사람들의 몫이고 나에게는 '특별한 삶'이 주어진다고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삶'이라는 것은 유학을 시작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것이 결코 특별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가진 능력이라는 것도 당시에는 '어학'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함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굳이 특별한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도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 유학을 강행한 것이 학업보다는 생활을 극복해야하는 부담이 남과는 달리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다른 유학생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의식주의 해결이 학업보다 먼저라는 특별한 악조건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아주 특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조건들은 내게 특별하게 그리고 다르게 산다는 것과 나만의 특별한 계획이라는 것이 정말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유학을 떠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20대 후반에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고, 학업보다도 우선 안정적인 의식주의 해결을 위해 조금은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남들이 도서관과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에 나는 택시를 운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할 때도 공부에 대한 부담이나 조급증도 그래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내 스스로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말입니다.
대학에 교복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분들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50대는 중·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입은 세대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니신 분들은 그 시절 대학의 교복이라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교복은 지금 대학에서 학군단 학생들이 평소 입는 단복과 아주 유사한 모양의 교복입니다. 그런데 이 교복은 사실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거의 입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교복이 존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학생의 경우 교련수업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기에 교련복이라는 것이 따로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 지겹게 교복을 입은 것도 그렇고, 아마도 대학이라는 곳에서 획일적인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저항도 있어서 그런지 사실 교복은 일부 학생들이 신입생 때 잠시 입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닌 던 시기에 교복을 대신 한 것이 청바지였습니다. 아마도 청바지와 통기타가 70년대의 청년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청바지를 입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청바지를 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같은 것이라고 해도 남과는 다른 것을 나름대로 추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소위 유행을 따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독창적인 것, 나름 특별한 것이 억눌려 있던 시대의 어쩌면 자기 자신의 탈출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 동안 살아온 시절을 회상하면, 평범하지 않은 것, 자기 자신만의 것, 그래서 같은 것 같지만 그래도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그 동안 우리가 살았던 시절을 이끌게 했던 동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했던 산업화, 공업화도 이미 다른 나라에서 해왔던 것을 따라하면서도 우리 나름의 산업화를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참 많은 시행착오와 또 다른 불평등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기회의 평등이 강조되던 시기에도 평등이라는 것을 통해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기도 했고,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넘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몇 년 전부터 대학사회에서 소위 '과잠'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과잠'은 학과 학생회에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점퍼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툼한 점퍼에 학교명과 로고를 넣고 뒷면에 학과명을 새긴 일종의 유니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과의 결속을 다지고 일체감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올해 겨울에는 소위 벤치 코트라는 롱 패딩이 유행입니다. 원래 운동선수들이 벤치에서 입고 있던 패딩인데 이번 겨울 유난히 추워서인지 학생들은 누구나 이 패딩을 입고 다닙니다. 이 패딩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획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획일적이라고 다소 부정적인 판단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유행 속의 평범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성도 중요하고 독창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특별하거나 특수한 것이 아닌 그냥 평범한 것이 요즘에는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극히 개인적인 평가를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물론 학생들이 이런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롱 패딩을 의식적으로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뒤처지거나 오히려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유행에 따라가는 것이 소위 튀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이라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삶을 산다는 것은 그 삶을 살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인내와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하기 위해서 남들이 누리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특별하게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나중에 특별하게 산 것에 대해서 객관적인 냉철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면 과연 그 삶이 행복한 삶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도 의문입니다. 특별한 삶보다 오히려 그냥 평범한 삶이 더 가치 있고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평범하게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에 대한 기준도 사실 모호합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갈 자신도 사실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특별하고 특수한 것에 대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특별한 것'보다 그냥 '평범해서 좋은 것'을 찾고 싶습니다. 그 평범한 것이 오히려 앞으로 살아 갈 삶의 기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반가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이렇게 사는 평범한 삶이 행복하다는 의미를 되새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과연 평범하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려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를 빕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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