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연예인이 남긴 유서의 일부분이다.
유서 전문에는 치료를 받으며 겪은 허탈함과 힘겨움의 과정부터 삶의 끝에서 고민을 끝내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대중 앞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이기에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또한,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 때문에 곡으로나마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기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처럼 외관상으로 증상이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병은 사회적 가면을 쓰면 눈치 채기 힘들기 때문에 타인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2013년 개정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따르면 슬픔, 공허함 또는 절망감과 같은 우울한 기분, 모든 일상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 저하, 불면 혹은 과다 수면, 정신적인 초조함이나 불안감, 만성 피로, 무기력함, 집중력 감소,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등의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2주 연속 지속되면 우울증이라고 판단한다. 혹자는 그것을 끝없는 바다로 가라앉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몸조차 자신의 뜻대로 운신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신을 넘어 육체까지 지배하게 되는 무서운 질병이 어떻게 발현되는 것일까. 보통 환자의 상태가 다소 심각하지 않을 때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원인으로 짚는 경우가 많지만 오랜 기간 방치하거나 입원 등의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상황까지 도달했을 때는 여러 가지 원인이 뒤섞여 치료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한다.
지금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 무한 경쟁주의 등 각박한 현실이 지속되고 있고 현대인들의 정신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사회적 지위나 명예가 높아도 죽음의 문턱에서 고민하는 이가 많다는 것은 이미 여러 매체들의 보도가 입증해 주었다. 평범한 사람 또한 안심할 순 없는 점이 대인관계, 가정환경 등 누구나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고민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라는 존재를 좀먹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증상에 따른 병원을 간다.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경우 그에 맞는 병원을 찾는 것도 사실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국내에서 정신의학과는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우울증 환자들이 본인의 병을 진단조차 못 받고 홀로 앓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구권에선 우울증도 일반 진료와 다를 바 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한국은 갈 길이 멀다. 우울증 환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과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최고은 기자 yeonha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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