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천천히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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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천천히 살기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8-02-0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달팽이
게티 이미지 뱅크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쁘게 살아가는 국민이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하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무엇이든 빨리 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늦거나 지체하면 짜증을 내기도 하고 급기야 화를 내는 경우를 쉽게 경험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을 말할 때, 흔히 '급하다'는 것을 첫 번째로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이 급한 것은 물론 특징이 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성격이 급한 것이 특징이 될 수도 없고, 오히려 급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부정적인 평판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가 급한 성격을 특징으로 거리낌 없이 말하곤 합니다.

자기 스스로가 성격이 급하다고 말하면 외국 친구들은 '이 사람은 조심해야 할 인물'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흔합니다. 급한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다혈질이거나 신경질적이거나 대화나 타협보다는 감정에 좌우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외국 친구들은 자신의 성격을 급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스스로 성격이 급하다고 말하거나 또 다른 상대방에 대해서 성격이 급하다는 평가를 해도 듣는 사람이 거북해 하거나 불쾌해 하지도 않고 그냥 담담하게 말하고 받아들입니다. 또 때로는 자신의 성격이 급하다고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내 성격이 급하니 함부로 들이대거나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성격이 급해서 이득이 되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을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짜증을 내서 그 일을 망치기도 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려서 될 일도 안 되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무엇인가를 급하게 하다보면 치밀하고 세심하게 하지 못해 허점을 보이기도 하고 아쉬움이 남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급하게 일을 하면서 짜증이 나거나 화를 낸다면 그 일의 성사를 떠나서 불쾌한 여파가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급한 성격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탓이라기보다는 그 결과를 '남의 탓'에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살아온 지난 세월을 곰곰이 따져보면 나 역시 급하게 '빨리 빨리'를 외치며 살아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빨리 빨리'가 결국에는 '빨리 빨리' 성과를 낸 것도 아니고, 오히려 보통의 경우보다도 더 늦게 성과를 냈거나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격이 급해서 일을 빨리 한다는 것을 그 동안 '자랑 아닌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글을 빨리 쓴다는 것도 글을 빨리 쓰다 보니 오타도 많고 말이 되지 않는 부분도 정말 많이 있음에도 빨리 써버려야 하는 습성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학회나 기관에서 평가의뢰가 오면 의뢰를 받는 즉시 작성하여 보내는 것도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평가라는 것은 좀 더 세심하고 꼼꼼하게 검토하고 신중히 해야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무엇이든 빨리하고 늘 남보다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어쩌면 잘못된 습성을 고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말 아주 추운 저녁에 작은 저녁식사 모임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내가 파견되어 근무했던 기관의 전·현직 단장이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이제 3월이면 임기가 끝나는 현 단장님이 주선하셔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임 장소가 집에서 차로 가면 약 20분 걸리는 곳이었지만, 무척 추운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습니다. 집에서 나와서 약 20분을 걸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갔더니 눈앞에서 버스가 떠나 다음 버스를 기다려 타고 가니 약 1시간 40분이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온 후 6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버스 배차시간을 모르고 가서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건널목에서 빈호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지나가는 바람에 또 정류장에서 20분을 기다려 차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또 20분을 걸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평소 운전을 할 때, 앞차가 조금이라도 지체하거나 천천히 가면 내심 짜증을 내고 추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내를 가지고 버스를 놓치고 기다리고 하는 것이 정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에 기다리고 걷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나지도 않았고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그렇고, 칼바람 속을 걷는 시간도 그렇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그 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차를 타고 지나다니던 버스정류장에 혼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한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그 주변을 돌아보고 살펴보면서 그 동안 무심코 지나치거나 보지 못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길가의 상점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퇴근시간에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게는 정겨운 모습으로 보였고, 버스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수많은 상점들과 사람들을 접하는 것이 즐겁기도 했습니다. 추위에 집에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모임에 갔다는 말에 아내는 추운 날 무슨 고생을 사서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내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 내가 버스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습니다. 유학을 가서 처음 내차가 생긴 후,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늘 차를 운전하고 다녔습니다. 자동차가 없는 내 일상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빨리 가야하고, 빨리 도착해서 일을 해야만 하는 그런 일상은 내게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고 이동하고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이 새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서울이나 다른 곳에 운전을 하지 않고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하지만, 마음속의 여유보다는 빨리 이동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마음이 더 급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경험과 같은 느낌을 받을 여유는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천천히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음식도 패스트푸드보다 슬로우 푸드가 건강에 더 좋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도 빠른 것보다는 신중히 고민하고 행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한 것이고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천히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되는 지름길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마치 진리라고 믿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서둘러 해야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운동경기에서도 0.001초라도 빨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늦게 되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꼴찌에게 박수를' 주는 것은 인간적으로 그리고 도의적으로 격려하는 것이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패자를 위해 잠시 격려를 하는 것에 불과하고, 마지막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축하하는 것은 승리한 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빨라야 하고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앞서간다는 것은 앞에 보이는 목적만을 바라보고 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앞에 펼쳐 있는 것은 목적이나 목표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승리하기 위해서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것만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우리 앞에 주어진 다른 것들은 방해만 되는 것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본다면, 그 목적이나 목표는 순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목표나 목적보다도 인생 앞에 펼쳐진 다른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목적이나 목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나 목표를 급하게 서둘러 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천천히 돌아보면서 해야 할 것을 정하고 남들보다 한발 늦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목표나 목적도 우리가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인생의 삶 전체에서 보면 반드시 옳지만은 않은 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만을 보지 말고 그 주위를 둘러보고 그것에 대한 스스로의 검증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조금은 천천히 가더라도 그리고 비록 승리한 사람보다 시간은 더 걸리고 늦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며 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추구하고자 했던 목표나 목적도 달성할 수 있고 그 성과와 더불어 다른 것도 경험할 수 있으니 오히려 천천히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은 천천히 여유를 갖고 간다면 분명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것, 보이지 않았던 것을 느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여유를 갖고 보면 늘 보던 것도 새롭게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너무 앞만 보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조금 천천히 옆을 보고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냥 지내는 일상에서도 새로운 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일상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동기와 동인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또 새로운 주말이 다가옵니다. 이번 주말 빠르게 보다는 천천히 옆과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심은 어떨까요? 행복한 주말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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