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강신용 시집 『어느 날 여백』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강신용 시집 『어느 날 여백』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8-02-0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어느날여백400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 작은 동네에 시화전이 열렸습니다. 함께 한 사람 모두 20대 초반이었어요. 시화는 당시 미대생이던 필자가 전부 그렸는데, 괴발개발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시는 모두, 신출내기 시인 한 사람 작품이었습니다. 시인은 필자보다 한 살 더 많았지요. 젊은 사람들 뜻이 가상하다 생각했나 봐요. 팔아서 독서모임에 선용한다는 말에 무작정 동참하였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변변치 못한 실력 돌아보지 못해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정신 줄 놓을 만큼 거나하게 술 얻어마셨지요.

엊그제 상가가 있어 모처럼 세종특별자치시에 갔습니다. 시화전은 물론 강가 미루나무 숲을 비롯한 아련한 기억들이 널따란 도로 위를 함께 달릴 뿐, 추억어린 장소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더군요.

집에 들어오다 보니 우편함에 시집 한 권 꽂혀 있습니다. 상기한 시화전에 함께 했던 강신용 시인의 6번째 시집 『어느 날 여백』이더군요. 반갑기도 하고, 편안한 시어들에 빠져들어 한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시인은 대전에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지요. 예전엔 출판사도 제한하였었나 봅니다. 출판사 처음 시작할 때 등록이 불가하여, 출판사 등록만 하고 일하지 않던 필자 지인과 연결해 주었었지요. 처음엔 주로 대학교재를 출판하였습니다. 사업수완도 좋은가 봅니다. 필자의 부실로 오랫동안 소원했지만, 날로 번창하여 그가 출판한 많은 양서를 접하게 되었어요.



강신용 시인은 일찍이 탁월한 시적 재능을 인정받아 약관에 작품 활동 시작하였으며, 198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이후 『가을 성』(1985), 『빈 하늘을 바라보며』(1990), 『복숭아밭은 날 미치게 한다』(1993), 『나무들은 서로 기도를 한다』(2003), 『목이 마르다』(2013)등을 출간하였지요. 대전문학상, 허균문학상, 대전시인상, 한성기문학상, 대전펜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삶에 여백은 필수입니다. 삶의 깊이이자 활력소이기 때문입니다. 동양화도 여백이 강조됩니다. 여백은 그저 빈공간이 아닙니다. 과감한 생략이기도 하고 절제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혁(謝赫, 중국 남제, 생몰미상)이 말한 화론 6법 중 경영위치經營位置이기도 하고 기운생동氣運生動이기도 합니다. 구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변화와 통일, 균형을 갖추는데 필수적입니다. 한편으로 공간, 운율, 생명감, 생동감 표현에 활용되지요.

강신용 시인 작품은 첫 시집부터 여백이 강조되더군요. 물론 시가 회화적 요소를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말이지요. 산수화 한 폭 보는 듯합니다. 시를 사랑하는 것이야 모든 시인 동병상련 아니겠어요. 작품 읽다보니, 누구보다 더 뜨거운 시에 대한 애정, 열정이 느껴집니다. 어줍지 않은 필자 생각보다 시집에 실려 있는 몇몇 평자 글을 옮겨 봅니다.

"강 시인이 다루는 모티브들에 일관된 정서는 그리움이다. 이 점이 소재의 다양함과 함께 시집 전체의 통일성을 보장한다."(이영걸, 『가을 성』 해설)

"강신용시인은 서정의 짙은 바탕위에 삶의 참 모습을 격조 높게 직조해내고 있다. 그의 시선에 따라, 그의 심상에 따라 달라지는 시적 굴절은, 그래서 더욱 강열한 이미지를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리헌석, 『가을 성』)

"그는 여간해서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로는 노기를 띠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시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를 높이고 기쁨에 겨워 둥글어 오르는 개구리 등허리처럼 되어 온몸으로 운다."(김수남, 『복숭아밭은 날 미치게 한다』 서평)

"'여백'은 강신용 시인이 서정의 세계로 나아가는 핵심 키워드이다. 그것은 그저 서정을 물들이기 위한 빈 공간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공허함 내지 허전함과 같은 정서적 일탈도 아니다. 그것은 공존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생겨 나오는 빈 지대이다."(송기헌, 『어느 날 여백』 해설)



시 한편 감상해 보실까요.



좋은 일 생겨 기쁠 때

엄마 하고 읊조리면

세상이 환해집니다.

힘든 일 만나 막막할 때

엄마 하고 하늘을 보면

절로 힘이 솟습니다.

언제 불러 봐도 다정한

아무리 불러 봐도 싫지 않은

그렇게 둥글고 따뜻한

- 엄마3 전문.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5.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