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상가가 있어 모처럼 세종특별자치시에 갔습니다. 시화전은 물론 강가 미루나무 숲을 비롯한 아련한 기억들이 널따란 도로 위를 함께 달릴 뿐, 추억어린 장소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더군요.
집에 들어오다 보니 우편함에 시집 한 권 꽂혀 있습니다. 상기한 시화전에 함께 했던 강신용 시인의 6번째 시집 『어느 날 여백』이더군요. 반갑기도 하고, 편안한 시어들에 빠져들어 한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시인은 대전에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지요. 예전엔 출판사도 제한하였었나 봅니다. 출판사 처음 시작할 때 등록이 불가하여, 출판사 등록만 하고 일하지 않던 필자 지인과 연결해 주었었지요. 처음엔 주로 대학교재를 출판하였습니다. 사업수완도 좋은가 봅니다. 필자의 부실로 오랫동안 소원했지만, 날로 번창하여 그가 출판한 많은 양서를 접하게 되었어요.
강신용 시인은 일찍이 탁월한 시적 재능을 인정받아 약관에 작품 활동 시작하였으며, 198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이후 『가을 성』(1985), 『빈 하늘을 바라보며』(1990), 『복숭아밭은 날 미치게 한다』(1993), 『나무들은 서로 기도를 한다』(2003), 『목이 마르다』(2013)등을 출간하였지요. 대전문학상, 허균문학상, 대전시인상, 한성기문학상, 대전펜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삶에 여백은 필수입니다. 삶의 깊이이자 활력소이기 때문입니다. 동양화도 여백이 강조됩니다. 여백은 그저 빈공간이 아닙니다. 과감한 생략이기도 하고 절제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혁(謝赫, 중국 남제, 생몰미상)이 말한 화론 6법 중 경영위치經營位置이기도 하고 기운생동氣運生動이기도 합니다. 구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변화와 통일, 균형을 갖추는데 필수적입니다. 한편으로 공간, 운율, 생명감, 생동감 표현에 활용되지요.
강신용 시인 작품은 첫 시집부터 여백이 강조되더군요. 물론 시가 회화적 요소를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말이지요. 산수화 한 폭 보는 듯합니다. 시를 사랑하는 것이야 모든 시인 동병상련 아니겠어요. 작품 읽다보니, 누구보다 더 뜨거운 시에 대한 애정, 열정이 느껴집니다. 어줍지 않은 필자 생각보다 시집에 실려 있는 몇몇 평자 글을 옮겨 봅니다.
"강 시인이 다루는 모티브들에 일관된 정서는 그리움이다. 이 점이 소재의 다양함과 함께 시집 전체의 통일성을 보장한다."(이영걸, 『가을 성』 해설)
"강신용시인은 서정의 짙은 바탕위에 삶의 참 모습을 격조 높게 직조해내고 있다. 그의 시선에 따라, 그의 심상에 따라 달라지는 시적 굴절은, 그래서 더욱 강열한 이미지를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리헌석, 『가을 성』)
"그는 여간해서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로는 노기를 띠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시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를 높이고 기쁨에 겨워 둥글어 오르는 개구리 등허리처럼 되어 온몸으로 운다."(김수남, 『복숭아밭은 날 미치게 한다』 서평)
"'여백'은 강신용 시인이 서정의 세계로 나아가는 핵심 키워드이다. 그것은 그저 서정을 물들이기 위한 빈 공간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공허함 내지 허전함과 같은 정서적 일탈도 아니다. 그것은 공존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생겨 나오는 빈 지대이다."(송기헌, 『어느 날 여백』 해설)
시 한편 감상해 보실까요.
좋은 일 생겨 기쁠 때
엄마 하고 읊조리면
세상이 환해집니다.
힘든 일 만나 막막할 때
엄마 하고 하늘을 보면
절로 힘이 솟습니다.
언제 불러 봐도 다정한
아무리 불러 봐도 싫지 않은
그렇게 둥글고 따뜻한
- 엄마3 전문.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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