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은 오래 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식탁에 올랐다. 고대 로마 황제를 비롯 클레오파트라, 한국의 고대 조개무지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카사노바도 굴을 꽤 즐겨 먹었다. 천하의 사랑꾼 카사노바는 하루에 생굴을 50알씩 먹었다고 한다. 여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굴이 정력에 좋다는 건 꽤 일리가 있다. 굴에는 철분, 칼슘, 아연이 풍부하다. 그래서 굴을 바다의 우유 내지는 바다의 소고기라고 한다. 그 중 아연은 정력을 높이는데 필요한 영양소다.
굴은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부터 2월까지 먹어야 제대로 맛을 볼 수 있다. 5월부터 8월까지는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설 무렵인 이맘 때가 딱 제철이다. 시베리아를 방불케 하는 매서운 추위로 꼼짝 못하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이거야말로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춥다는 핑계로 운동을 안 한지 달포가 넘어가는데 이 놈의 식욕은 365일 왕성하다. 늦은 밤 라면에 찬밥 말아먹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새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몸 여기저기서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매일 먹는 밤참이 꿀맛이긴 한데 뭔지 모를 불쾌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중무장을 하고 우리 식구는 보령 천북으로 갔다. 청양고추처럼 매서운 바람에 코끝이 알싸하다. 그래, 이런 때 굴을 먹어줘야 해! 굴 마을은 패딩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한 솥 가득 굴찜이 나왔다. 껍데기를 벌려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굴 껍데기 까는 솜씨가 서툰 날 보던 언니가 혀를 차더니 접시에 굴 알맹이를 연신 던져줬다. 졸깃한 굴을 조심스럽게 씹었다. 혹시라도 흑진주가 나올 지 누가 아나? 역시나 흑진주는 없었다.
굴은 역시 생굴이 최고다. 굴구이, 굴 밥, 굴국, 굴 전, 굴 떡국, 굴 생채 등 굴을 이용한 음식은 많다. 그렇지만 굴은 날 것 그대로 다른 것과 섞이지 않은 굴 자체로만 먹어야 맛있다. 한 접시에 1만원하는 생굴을 두 접시 시켰다. 비릿한 향과 함께 미끈덩한 덩어리가 씹을 새도 없이 목젖을 건드리고 쑥 넘어갔다. 굴은 특유의 느낌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입안 가득 차는 물컹한 촉감과 비릿한 바다내음이 어떤 사람에겐 생소하다. 음식도 자꾸 먹어봐야 세련된 감각이 생긴다.
천생 촌사람인 아버지는 굴을 좋아하신다. 예전에 엄마는 겨울이 오면 종종 생굴을 사오시곤 했다. 어린 나는 그 낯선 향과 혀에 닿는 야릇한 부드러움이 영 어색했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나마 양념 맛으로 먹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식성이 좋으시지만 취향은 정반대다. 아버지는 된밥과 국물 없는 반찬, 쇠고기를 좋아하신다. 엄마는 반대로 진밥과 국 종류, 돼지고기를 잘 드신다. 요즘 옆에 사는 언니가 피곤하다며 하소연을 자주 한다. 아버지 성품에 밥상머리에서 뭐라뭐라 하시진 않는다. 좋아하는 건 더 잘 드시고 안 좋아하는 건 덜 드시기 때문에 식구들이 눈치가 보이는 것 뿐이다. 입맛이 다른 아버지 때문에 조금은 성가셨을 엄마가 굴만은 정성스럽게 챙긴 연유로 6남매를 둔 건 아닐까.
오래 전 친구와 선유도를 간 적이 있다. 8월 말이었다. 바캉스 시즌이 끝나갈 무렵이어서 섬은 쓸쓸했다. 물 밀 듯이 밀려와 한꺼번에 떠난 피서객들의 잔상이 곳곳에 배어 있어 더더욱 적막감이 묻어났다. 우리는 바닷가 자그마한 슈퍼 옆 평상에 누워 쏟아지는 졸음에 꾸벅거리고 동네 개인 듯한 백구도 졸린 건 마찬가지였다. 늦은 오후 예쁘장한 학교에서 철봉에 매달려 운동하는 햇병아리 남자 선생님을 봐도 설레지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섬 둘레를 한바퀴 돌았지만 친구와 난 영 기운이 안 났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자고 배가 고파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변변한 식당도 없어 주린 배를 잡고 바닷가 바위에 붙은 굴을 깨뜨려 콩알만한 알맹이를 정신없이 먹었다. 어찌나 짠 지 나중엔 속이 울렁거렸다. 급기야 친구가 뻘에 들어갔다가 발이 안 빠져 동네 총각이 달려와서 도와줬다. 그 총각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연신 싱글벙글 했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짭쪼롬한 굴 한번 더 먹어야겠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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