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영화는 마냥 신파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의 시선 때문입니다. 건강한 몸이 재산이라던 어머니가 병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큰 아들에게 아픈 둘째를 맡깁니다. 그리고 술 한 잔 하자고 청합니다. 와인을 따고, 마시고, 그러더니 춤 한 번 추자고 합니다. 참 슬프고 기이한 화해입니다. 큰 아들도 서른여덟이나 먹어서인지 어머니의 부탁을 불평 없이 받아들입니다. 투 숏으로 두 사람의 대작과 춤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어느 사이 뒤로 쭉 빠져서 풀 숏으로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한 동안 바라봅니다. 대단한 기교를 부리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기억될 명장면입니다.
남은 두 형제의 생활. 형 조하는 집에서 피아노 치거나 게임만 하는 동생 태진을 부추겨 운동도 하고 돈도 벌자 하며 전단지를 돌리게 합니다. 그러다 태진을 잃어버립니다. 놀라고 걱정스러운 조하가 한참 만에 길거리 한켠에 놓인 피아노를 치는 동생을 발견합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 3악장이 피날레로 치닫는 격정적인 장면에서 태진은 아무도 범접하거나 훼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상 속에 있습니다. 조하는 길 건너편에서 오래도록 그걸 지켜봅니다. 카메라는 조하 뒤편에 있습니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에게 캐나다로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돌아나오는 조하. 긴 복도 끝 의자에 앉아 흐느끼는 그를 향한 카메라도 그저 멀리서 한참을 바라봅니다. 이처럼 영화는 결정적인 순간 카메라가 뒤로 물러섭니다. 그리고 오래 지켜봅니다. 그들의 인생사가 안쓰럽고, 안타깝지만 함부로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만의 세상을 존중합니다.
장르 안에서 영화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정해진 대로 갑니다. 그러나 틈과 사이에서 빛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 역시 그렇습니다. 그 겸허한 존중의 거리두기가 마음을 울립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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