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사하면서 TV는 창고에 넣어놨으니, 저희 집에는 라디오와 아침신문 3부 그리고 스마트폰이 뉴스를 접하는 창구가 됐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문자를 완전히는 읽지 못해 제 옆에서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며 설명해달라거나 신문을 찢어 머리에 뒤집어 쓰는 새로운 놀이를 개발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아이들에게 뉴스에서 거리두기를 가르치고 있는 셈입니다. 팩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모든 일이 영상과 음성으로 전달되는 시스템에서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 너무 이른 시기에 ‘사망’‘폭행’이런 음성언어와 영상에 쉽게 노출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소심한 아빠인 셈입니다.
뉴스가 곧 직업이다보니 미디어와 관련 책을 즐겨읽습니다. 최근에는 알랭드보통이 지은 ‘뉴스의 시대’라는 책에서 제가 궁금해하던 부분에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선진 경제에서 이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중략)아침 기도는 간략한 아침 뉴스로, 저녁기도는 저녁 종합뉴스로 바뀌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우리 인생은(중략) 어떤 제도권 교육기관보다다도 더 커다란 영향력을 무한정 행사하는 뉴스라는 독립체의 감독 아래서 보낸다”라고 말해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내가 판단한 옭고 그름의 가치관이 사실은 성경도 아니고 경험도 아닌 최근에 본 뉴스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알랭드보통은 “자의식을 갖고 뉴스를 수용하려 할 때 얻게되는 보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라고 책을 쓴 이유를 설명합니다.
TV를 치우자 저희 집은 전보다 더 소란스러워지고 지저분해졌습니다. 두 아이가 이것저것 가지고 놀다가 싸우기도 하고 아무 곳에나 던져놓는 바람에 화해시키고 청소하는 게 일입니다. 대신 유치원이며 어린이집에 있었던 일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유치원에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때면 저는 속으로 안도의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얘들아 너는 네 친구와 선생님에게 더 관심을 갖거라, 뉴스를 보고 세상을 고민하는 일은 아빠가 할테니.”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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