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이야 크게 다를 바 없었지요. 겨우내 죽공예 하는 것이 특별 했어요. 주로 소쿠리나 광주리 만들었지요. 각종 바구니, 대자리, 죽부인, 닭장, 갓, 연, 부채 등 못 만드는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외할아버지, 외삼촌 중심으로 온 가족이 함께 일 하였습니다. 만들어진 제품이 몹시 경이로웠나 봅니다. 함께 어울려 일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니까요. 분주하게 바삐 움직이면서도 웃음꽃 만발하였지요. 대나무 엮어가는 빠른 손놀림, 더욱 경탄스러운 것은 도톰한 칼로 긴 대나무를 한 번에 쪼개는 것이었습니다. 대나무 한쪽 끝에 칼날 대고 댓돌에 툭 치면, 쩍 하고 한 번에 갈라지는 모습이 신기했지요. 같은 넓이로 쪼개서, 다시 세 겹으로 분리합니다. 서로 용처가 다르기도 하고, 겉대와 속대로 다양한 문양 만들기도 하지요. 손이 많이 닿는 곳이나 마무리는 얇게 손질한 소나무 뿌리로 했던 것 같아요.
죽공예 제품 효용성이나 가치 운운하기 전에 플라스틱, 고무 제품에 밀려 사라졌지요.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급변하는 생활문화로 사라진 문화가 한둘이 아니지요.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모두가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사라진 생활문화도 문화지만 없어진 집단의식도 많은 것 같아요. 그중 하나, 여유로운 마음과 환한 미소입니다. 여유, 온 몸과 행동에 나타나지요. 얼굴에는 미소로 그려지지요. 외할아버지는 과묵한 탓인지 언제나 말씀이 없었어요. 일 하다, 눈길 마주치면 미소만 날려 주셨지요. 도톰한 입술 꽉 다문 채, 얼굴가득 자비로운 웃음, 일하면서도 항상 잃지 않았어요. 돌아가실 때까지 필자와 나눈 대화의 전부인데요. 그 넉넉함, 따사로움, 사랑으로 점철된 외할아버지 미소가 문득문득 눈에 밟힌답니다.
서산마애삼존불 |
규모가 크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들었는데요. 규모가 문제가 아니지요. 삼국시대 당시 불교미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백제였지요. 신라가 황룡사 9층 목탑 만들 때 아비지(阿非知, 생몰미상)를 초빙해 가거나, 일본이 사원 만들기 위해 백제 사공寺工과 와공瓦工을 모셔간 일은 익히 알려진 역사입니다. 양질의 화강석이 풍부해 석재 다루는 기술 또한 최고였답니다.
미소가 좋아 여러 차례 찾아갔는데요. 볼 때마다 온 세상 밝힐 환한 미소에 반하고 맙니다. 탁월한 조각기술, 뛰어난 예술성, 아름다운 독창성이 돋보입니다. 마애불상으로 최고지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미소가 신비롭기만 합니다. 으뜸 불교미술품이면서 대단히 토속적이지요. 김원룡(金元龍, 1922 ~ 1993, 고고, 미술 사학자) 교수가 언급했다는 그야말로 '백제의 미소'요, 우리 자화상입니다.
삼존불 발견자 홍사준 박사에게 처음 정보 제공한 나무꾼이 들려준 이야기랍니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있는디유. 양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지유. 근데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볼따구니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 본마누라가 짱돌로 쥐어박으려고 벼르고 있구만유. 근데 이 산신령 양반이 가운데 서 계심시러 본마누라가 돌을 던지지도 못하고 있지유."
불상의 모습을 친근하게 아주 잘 묘사했지요. 우리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 아닐까요? 불가에 염화미소(拈花微笑)란 말이 있지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의미랍니다. 석가세존이 대중에게 연꽃을 보였을 때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 뜻을 깨달아 미소를 지었다는데서 유래했다 합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같은 말이지요. 마음이 통하면 모두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는 뜻이랍니다.
사악한 얼굴로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강압적 수단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답니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진 정치를 행하면 나라가 번영하고, 어진 정치 행하지 않으면 그 나라가 쇠퇴하여 치욕을 당하게 된다. 치욕 당하기 싫어하면서 어진 정치를 행하지 않는 것은 마치 습한 것을 싫어하면서 낮은 곳에 사는 것과 같다. 仁則榮, 不仁則辱. 今惡辱而居不仁, 是猶惡濕而居下也'
너도나도 진솔하고 해맑은 웃음, 따뜻하며 넉넉한 자비로운 미소가 우리사회에 만연했으면 좋겠습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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