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69. 거룩한 열반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69. 거룩한 열반

  • 승인 2018-01-3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아쉬움을 남기고 그러나 순원은 나리코와 일본으로 향하였다.

나리코를 혼자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비행기 안에서 나리코는 별 말이 없었다. 내내 잠만 잤다.



순원도 마찬가지였다.

광풍이 몰고 간 한 차례의 악몽이었다.

제프는 당당하게 외쳤었지.

"순원. 그렇지. 내가 잊지 말라고 했지. 식물들에게 오만하지 말라고.

그들을 무섭게 알라고...

쉬뢰더씨는 그 죄를 범한 것이야. 그자는 식물들에게 당한 거야. 자연의 질서에게 벌을 받은 것이라고...,

내가 범인이 아니야...,

바로 쉬뢰더 그 자신이란 말이야..."

네덜란드 경찰은 순원의 추론을 바탕으로 사건을 조사해서 결론지었다.

튜라플리네스는 사실 호흡을 할 때에는 산소를 흡입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광합성을 할 때에는 이산화탄소를 흡입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메카니즘은 일반 식물과 동일하다는 점.

다만 독특한 향기와 함께 스스로 광합성과 호흡을 선택하여 생명유지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 즉, 햇빛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광합성을 임의로 중지하고 계속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동물적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 실로 희귀한 식물이라는 점.

그런데 동물적 속성을 발휘하여 물이나 햇빛 말고 다른 영양소, 예를 들어 동물들이 좋아하는 단백질 성분의 고기나 핏물 또는 영양제를 주면 동물적적 속성으로 이를 흡수하여 이를 소화한 다음에는 동물의 배변이나 방귀같은 현상의 배출이 이어진다는 점. 이때에는 간혹 지독한 냄새가 날 수 있거나 암모니아나 메탄가스등 유독가스가 배출될 수 있다는 점.

이 경우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

제프는 이 점을 간파했다는 점.

그는 식물 플랑크톤을 비롯하여 해양식물 중에 독성을 가지고 있는 조류등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 독성 식물을 물과 함께 튜라플리네스에 주면 이를 소화한 후, 이제까지 자연에 없었던 새로운 성분이나 독성이 배출시킨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았었던 점.

여러 차례의 시험 끝에 그는 가장 독성이 강한 해양조류를 선택했다는 점.

그리고 주기적으로 쉬뢰더씨의 연못에 이들 해양조류 배양하면서 연구실의 튜라플리네스에 부어주었다는 점.

더욱이 쉬뢰더씨는 제프의 권유에 따라 실내 연못에 해양조류를 배양하면서 이를 튜라플리네스에게 공급하고 이 과정에서 튜라플리네스가 배출하는 독특한 향기에 매료되었었다는 점.

그러면서 스스로가 독성에 중독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

사건은 이렇게 종결되었다.

알프레드 제퍼슨. 제프.

가슴이 아린다.

과학을 자연의 관찰과 분석, 그 자체로 정의했던 과학자.

코카콜라 배합의 비밀을 파헤치고도 돈 보다는 분석의 성공 그 자체에만 만족하던 식물학자.

생명과 유전공학을 증오한다며 인간에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불태우면서 자기만의 질서를 주장하던, 그러나 결국 남의 생명의 질서를 깨뜨린 행동 철학자… 살인자.

순원은 눈을 감았다. 조용히 잠만 청하였다.

하지만 나리코의 심정은 제프나 쉬뢰더씨보다 더 깊은 심연의 어두움이 있었다.

아버지 후루마쓰.

오사카 간사이공항.

도착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온 야마노아마고우치 산기슭.

산은 눈으로 하얗게 덮혀 있었다.

후루마쓰 씨의 집의 지붕도, 소나무가 구부러져 가로질러 자라고 있는 대문도 발자국 하나 없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나리코는 발자국도 없이 눈이 쌓인 대문을 들어서자 얼굴이 눈 색깔과 같이 하얗게 변했다.

아버지 연구실로 곧장 가보았으나 연구실에는 아무 인기척도 없었다.

부엌으로 가보는 나리코.

곡기라고는 조리해 본 적이 오래된 듯 부엌은 조리대를 비롯해서 정갈하게도 메마른 상태였다.

나리코는 산속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원이도 따라 뛰었다.

산길을 오르는 나리코는 숨이 찬 순원이가 따라잡지도 못할 정도로 익숙하고도 재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 문득 눈앞에 나타나는 신사의 표시 문.

도리이.

붉은 색의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듯 도리이가 눈앞에 나타나고, 이윽고 멀고도 좁은 긴 길이 산 위로 이어져 있었다.

차유도.

부드러운 흙길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변이 온통 붉은 기둥의 아름들이 소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 길을 꽤나 한참 오르자, 드디어 정면에 계단이 나타나고, 그 위 저 높게 정갈하게 서 있는 일본식 사당이 나타났다.

아마노기(天の樹) 신사.

그리고 신사 뒤에는 순원이 숨을 머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붉은 소나무가 이파리에 반짝빤짝 빛나는 눈송이들을 매달고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과연. 신사를 지어 모셔야 할 것 같은 위엄과 자태로 소나무는 높다랗게 서 있었다.

소나무의 신(神).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엄숙하고 숙연하며 신비한 기운이 서려있는 위엄에 순원은 감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나리코는 신사 앞에 서자, 허리를 깊게 숙여 절을 세 번 하고서는 박수를 세 번 쳤다.

순원도 엉거주춤 나리코를 따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이라도 받을 것처럼.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리코는 사당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 후루마쓰씨는 앉아 있었다. 오른쪽 무릎을 왼 무릎에 얹고서는 오른팔로는 턱을 고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반가사유상의 조각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후루마쓰씨를 보고 순원은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라도 난 듯 불길한 생각을 해오던 차라 후루마쓰씨를 보니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바라보던 나리코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반가워서 터진 울음이리라 라고 생각했던 순원은 소스라치듯 숨을 머금었다.

후루마쓰씨는 나무가 되어 있었다.

소나무.

몸에 걸친 적삼과 같은 옷은 마치 소나무의 껍질 같은데, 얼굴과 손은 검붉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입적.

득도를 한 도인의 열반에 든 모습이었다.

순원이는 무릎을 꿇고 후루마쓰씨에게 허리를 굽혀 머리를 땅에 대고는 얼어붙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숭고하고도 장엄한 모습이었다.

표정은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모습의 자세가 바로 그 자세인 것 같았다.

무릎과 팔로 자연스럽게 몸을 지탱하며 온 몸이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며 동시에 대각선의 조화를 이루는 안정된 자태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있었을까.

서로 말리거나 부추길 수도 없었다.

더욱이 위로의 말 같은 것은 꺼낼 수도 없었다.

나리코가 일어섰다.

그러더니 아버지 후루마쓰 씨의 곁으로 다가가 속삭이며 흐느꼈다.

"아버지. 기쁘게 가셨군요. 감사합니다.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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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아버지의 발 앞에 있는 노트를 집어 들었다.

후루마쓰 노트였다.

나리코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노트를 집어 들고 이번에는 아버지를 향해 절을 세 번 하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조용히 뒷걸음질을 쳐서 사당을 나왔다.

그러는 나리코에게 순원의 존재는 전혀 의식되지 않는 듯 했다.

말없이 집에 돌아온 나리코는 순원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하고, 조용히 마주 앉았다.

"이럴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가장 바라던 모습이었죠. 아버지는 다 얻으신 겁니다. "

"....."

"어머니도 어느 날 갑자기 저렇게 돌아가셨죠. 제가 그 때는 어렸지만, 어느 날 산에서 돌아가셨다면서 아버지가 묻고 오셨죠. 그 뒤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그토록 찾으셨습니다. 이제 그걸 얻으신 모양이죠.

아마도 이 노트에 그걸 남겨 놓으시지는 않았나 모르겠네요.

아버지는 순원씨를 알고 계셨으니까요."

그러면서 노트를 쳐다보았다.

지난번 후루마쓰씨가 보여 준 후루마쓰 일기와 같은 노트였지만 새 노트였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순원이 못내 궁금해서 물었다.

"우리 집안의 내력이죠. 슬퍼할 것은 없어요. 어차피 사당에서 신을 모시기로 되어 있는 운명이니까요. 다만 그 시기가 너무 일찍 왔네요. 내일이면 곧 집안사람들이 와서 아버지를 묻으실 거예요. 그리고 또 다른 집안 분이 신목지기가 되시는 거죠. 대를 이어가는 규범이 있답니다. 그분도 아버지와 같이 말을 못하시겠지요.

하지만 자꾸 손이 끊겨져요.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슬퍼할 것도 없다던 나리코는 그러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순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앞으로 나리코씨는?"

"저는 자유인이에요. 사람의 운명은 운명이지요. 저는 저의 운명이 있겠지요. 아버지의 운명과 저는 다릅니다."

"공부는 계속하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아버지가 안계시다는 것 뿐, 바뀌는 것은 없어요. 아버지가 쓰신 일기를 읽고 더 깨달아 지는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후루마쓰의 노트를 읽기로 했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컷1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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