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의 한 구간. |
정문에서 시작한 둘레길은 일제침략에 저항한 애국지사부터 6.25전쟁 때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 그리고 위급한 상황에서 타인을 구하려 희생한 의사자까지 생생히 만날 수 있다. 30여년 수령의 우거진 숲의 완만한 흙길을 3시간 남짓 걸으면 완주할 수 있어 혼자 또는 친목의 장소로 제격이다.
▶현충원 역사와 미카 129호를 만나다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은 현충원 정문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커다란 현충원 안내도에도 둘레길 노선이 상세하게 표시돼 있어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매점 옆 안내표지석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빨강길’이라는 이름의 보훈둘레길이 시작한다. 걸음을 막 배운 아이도 어른이 손만 잡아주면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언덕이 오르락내리락 반복한다. 소나무 숲은 한겨울에도 머리 위 구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졌으나, 길은 어둡지 않다. 둘레길을 시작할 때부터 오른쪽으로 묘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입에 보이는 곳은 사병 제1묘역과 장교 제1묘역이다. 대전현충원은 1979년 국립묘지 대전분소로 창설됐는데 시설공사를 마치기도 전인 1982년 8월 첫 안장을 시작했다. 사병 제1묘역은 어찌 보면 대전현충원에 가장 먼저 안장된 영현이 모셔진 곳으로 1984년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망명을 시도한 소련인 마투조크를 뒤쫓아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군과 ‘자유의집’앞에서 교전을 벌이다 전사한 고 장명기 상병이 안장돼 있다.
둘레길 초입을 걸은 지 10여분 지나면 ‘미카129호 증기기관차’와 마주하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군 제24사단장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 기관차다. 김재현 기관사가 미특공대원 33명을 태우고 적의 손에 들어간 대전역까지 돌진했던 역사를 품고 있다. 김재현 기관사를 포함한 철도원 287명이 한국전쟁 중 수송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했는데 대전현충원 현충탑에 철도원 150기의 위패가 봉안됐고 묘역에는 13명의 철도영웅이 잠들어 있다. 증기기관차를 관람하고 돌아온 둘레길에 메타세쿼이아가 반겨준다. 하늘로 곧게 뻗은 나무와 푹신한 침엽림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빨강길을 끝내고 다음 차례인 ‘주황길’을 걷기 전에 애국지사와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을 만날 수 있다. 계단식으로 이뤄진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은 대전현충원이 형님뻘인 국립서울현충원을 넘어 대한민국 대표 현충시설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다. 군인, 경찰, 국가원수 등이 아니면서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이들을 안장하는 묘역으로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을 비롯해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존경받은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등이 잠들어 있다. 또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과 한필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 마라토너 손기정 옹이 모셔져 있다. 각 묘역에는 안장자 생애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비문이 새겨져 있어 이를 읽어보는 것도 유익한 역사 공부가 된다.
주황길에는 또하나의 중요한 묘역을 경유한다. 바로 국가원수묘역이다. 홍살문에서 시작한 현충원의 권위는 현충문과 현충탑까지 직선으로 연결되는데 그 연장선이자 가장 높은 곳에 국가원수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4위를 안장할 수 있는 묘역(9653㎡)인데 2006년 10월 최규하 전 대통령과 영부인 홍기 여사가 이곳에 안장됐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해 서울현충원에 안장됨으로써 대전현충원에 국가원수묘역에 추가 안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와 경제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사후의 안장마저 서울을 고집하는 아쉬움을 느끼며 국가원수묘역 옆으로 난 둘레길을 마무리 한다.
▶“신분 차별적 안장제도 완화를 넘어 종식을”
곧바로 이어지는 노랑길을 걷기에 앞서 눈길을 끄는 묘역이 있으니 바로 장군 제1묘역이다.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은 그동안 안장자의 신분에 따라 묘역의 위치와 각 묘소의 면적을 다르게 적용해왔다. 장군과 사병의 묘소 너비가 다른 것도 현충원이 지닌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돼 왔다. 장군 묘역은 한 기당 26.4㎡(8평)이고, 장교와 사병묘역은 한 기당 3.3㎡(1평)이라는 차별을 뒀다. 또 장군과 장교 그리고 사병을 각각 다른 곳에 묘역을 분리설치했다. 장군 제1묘역은 이러한 신분제적 안장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봉분이 있는 묘소 형태로 278명의 장성출신이 안장됐다. 국가보훈처는 대전현충원에 사병과 장교를 한 묘역에 안장하는 통합안장제를 지난해부터 시행해 신분구별을 다소 완화했다.
작은 호수처럼 물이 담긴 충혼지를 잠시 바라보는 것으로 휴식을 마무리 짓고 얼마나 걸었을까 마실 수 있는 샘물이 나타난다. 암반층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정비된 샘터가 2015년 조성됐는데 추모객이나 기자처럼 둘레길을 걷는 시민들에게 쉼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보훈샘터까지 도착했다면 보훈둘레길의 절반을 걸음 셈이다. 이제부터 이어지는 초록과 파랑 그리고 쪽빛, 보라길은 현충원의 전경을 조망하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코스로 이어진다. 초록길은 가장 최근에 연결된 둘레길인데 최근 공사 중인 7묘역 상단 주변으로 현충원을 조망할 전망대가 있다. 이곳을 걸으며 장교제3묘역 등 2만여기의 묘역을 바라볼 수 있다. 대전현충원은 더이상 묘소매장을 받을 수 없는 만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8만5000여기를 안장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8만3000여기가 안장돼 96%의 안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확충 공사중인 제7묘역은 현충원의 마지막 봉안묘로 오는 6월 전체 완공될 예정이며 이후 만장을 대비하여 납골당인 봉안당(충혼당) 건립공사도 오는 12월부터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서울현충원처럼 묘소매장이 아닌 납골방식으로 영현을 모시게 된다.
초록길에서 바라본 현충원 묘역은 묘비가 무한히 펼쳐진 모습인데 대한민국이 지금에 서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음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천안함 46용사와 당시 실종자 수습 과정에서 숨진 한주호 준위가 눈 앞에 펼쳐진 많은 묘비 중 한 곳에 잠들어 있다. 또 세월호 사고 당시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 순직한 경기 안산 단원고 교사 10명이 순직공무원 묘역에 모셔졌다. 사회를 위해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안장식을 거행하고 격식을 갖춰 현충원 묘역에 안장하는 장례 자체가 위로이자 치유이면서 교육이 되고 있다. 이때문에 현충원을 국민통합 최고의 장소라 여기고 있다. 또 초록길 주변에는 최근 묘역확충 공사중 사기그릇 조각이 대량으로 발견됐는데 이곳이 갑동 평전말 마을에 그릇을 만드는 ‘사기소’가 있었고 ‘점말’이라고 불렸다는 조사가 이뤄졌다.
보훈둘레길 노선도. |
단풍이 유명한 보라길을 끝으로 현충원 둘레길은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온다. 대전현충원은 보훈둘레길을 만드는 별도의 예산도 없이 직원들이 바위를 하나씩 옮기는 정성으로 지난 10년간 장기간 만든 길이다. 그 결과 나라를 위해 큰 기여를 한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부활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원형의 흙길이 완성됐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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