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예술계의 조그만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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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예술계의 조그만 권력

  • 승인 2018-01-29 11:39
  • 신문게재 2018-01-30 23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정용도
정용도 미술비평가


권력은 지속되려고 한다. 이것은 권력의 속성이 아니라 욕망이다. 권력과 욕망은 그 크기만큼 그늘을 만들어낸다. 그늘이 오래 지속될수록 생명은 싹을 피우지 못하고 성장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혹은 특정 집단이 자신들 욕망의 시간을 연장할수록 시스템이 발휘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들은 사라지고, 문화계 안의 다수의 구성원들은 더 이상 삶의 긍정성과 관련된 문화의 본질에 다가가거나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목적성을 상실하고 덧없이 흘러다니는 조그만 권력들의 부정적 순환은 정신의 질병은 만들어내고, 그 질병은 어느새 집단 전체의 분위기가 된다.

예컨대 블랙리스트 파문은 단순히 그 안에 포함된 사람들의 배제만이 아니라 문화 생산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문화의 동력을 단절시키고 개인의 무기력함을 조장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공공연한 비밀로 드러나게 되면 검열이 된다. 사실 외부의 주체에 의해 행해지는 검열은 저항을 전제로 하지만, 그 저항이 사라지고 검열에 굴복하는 순간 자기검열이 시작된다. 기존의 시스템이나 권력에 눈치 보며 순응하기 위해, 말하자면 최소한의 생존의 기회라도 얻기 위해 다수의 구성원들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검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질병의 분위기 속에서는 특별히 강력한 저항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스스로 자기검열을 시작하고 부조리에 무감각해진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수많은 권력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권력들은 사실 덧없는 게임과 같다. 권력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이 되거나, 사유화될 때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부조리의 주체가 되고, 역사는 그들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사회의 소프트웨어라 말할 수 있다. 예술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사회의 물질적인 형식인 인프라 스트럭처들이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기능을 부여하고, 내용을 통해 형식을 의미의 영역으로 불러들인다. 이것은 문화가 순기능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을 때, 그리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20세기 초 독일의 예술이론가 발터 밴야민은 정치가 예술화될 때, 말하자면 권력을 진실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할 때 사회가 병들게 되는데, 그 예로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태리의 무솔리니 정권을 언급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군부 독재정권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어쨌든 시대를 막론하고 이들은 문화를 그들의 사회적인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고, 결과적으로 예술은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생산의 도구로 타락했다. 이들이 제시한 문화적 기준은 사회의 역동적인 엔진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예술적 상상력을 통제함으로써 정신적인 나태와 게으름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악의 일반화 과정을 조장한다.

문화계 안에서 권력을 사유화시키는 인사들의 특징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에서 자신이 해야 될 일의 방향과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실제로 자신의 위치에 맞게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문화라는 사회의 동력을 역사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맥락을 통해 정리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예술이 생산하는 진실을 삶이라는 현실과 연결시켜 확산시킬 수 있는 시각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그런 조그만 권력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수행하는 일들은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의 과정들은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미래를 지향하는 게임이 아니라 언제나 주변부에 머무르는 루저들의 게임의 판돈 정도로 전락하게 만든다.



정용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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