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질문을 하는 분이 내 일상을 꼬치꼬치 알고자한 질문은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지낸다는 답은 일견 성의 없는 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번 '그럭저럭'이라는 답을 하면 더 이상의 물음도 없고 대충 이해하는 그럼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내가 답하는 '그럭저럭'에는 참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내게 '그럭저럭'은 학기 중에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도 있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각종의 행정적인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것도 있고, 글을 쓰기도 하고,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에 특강준비도 하고 또 새로운 학기를 위해 강의 준비와 연구를 계속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비록 '그럭저럭'이라고 표현하지만 흔히 말하듯 '놀고먹는' 그런 일상이 아니라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그렇고 어쩌면 질문하는 분이 자세한 내용에 큰 관심이 없고 그냥 지나가는 인사치레로 묻는 말일 수도 있으니 그냥 '그럭저럭'이라는 답이 가장 적절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는 말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냥 덧없이 보내는 시간'과 그래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유형의 시간을 흔히 그리스어로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고 합니다. 크로노스는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과 같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나가는 시간이나 큰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바로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카이로스는 누구와 같이 하는 행복한 시간은 물론이고 어떤 일이나 생각, 행동 그리고 무엇인가를 위해 집중하고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시간과 같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사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말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크로노스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의 영역에서 물리적으로 지나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면, 카이로스는 인간의 의지와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카이로스의 의미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사느냐는 문제는 종교적 의미에서 말하는 '찰라'의 의미도 그렇고 물리적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또 다른 차원의 시간의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생각에서 보면 동물에게는 크로노스의 시간만이 존재하고, 카이로스의 시간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는 해석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이것은 크로노스와 같은 물리적 시간에 새로운 의미의 시간을 부여하여, '그냥 지나가는 시간'인 크로노스를 '보다 의미 있고 뜻있는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인간이며, 그리고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카이로스가 신의 영역에서 신의 의지에 따라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나 적어도 '보람'을 느끼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카이로스는 인간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시간을 따져보면 그 시간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한 인간의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그때그때가 아니라 인생의 전체에서 살펴보면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사회에 나와서 직업을 갖고 활동하고 또 병들고 늙어가는 시간의 흐름이 순간순간에는 그 시간이 길수도 있고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의 인생을 생각하면 결코 그 시간은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항상 언제나 늘 모든 시간에 충실했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적도 있고 또 때로는 후회가 드는 시간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시간들이 인생의 삶의 전체 시간 속에서 그 의미들을 살펴보면, 그 시간 모두가 어쩌면 소중한 시간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위 '멍 때리는 시간' 역시 다음의 카이로스의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은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하루하루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살아가는 시간이 마치 인간이 태어나서 살다가 다시 돌아가는 시간의 축소판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힘들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나름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신이 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도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따라서 그 시간들이 모두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는 것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크로노스의 시간이 그냥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을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고 보내는가에 따라서 그것이 그냥 크로노스에 머물 수도 있고, 카이로스로 의미 있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의지를 동원해서 크로노스를 '창조적'으로 카이로스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창조적'이라는 의미는 새롭게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창조'의 의미도 있지만,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창조'의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창조'의 의미가 무엇이 되었던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창조적'으로 바꾸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벌써 또 다시 한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나에게 주어진 크노로스의 시간들에 대한 반성을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크로노스의 시간을 나만의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어떻게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말 모든 분들이 카이로스의 창조적 변화를 경험해 보시기를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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