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터넷 캡쳐 |
그날 점심시간은 옥(玉) 선생 집에서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그녀의 모친 생일이라지만 이것은 명분이었고, 원근각지의 손님들을 초대하여 일년에 한 번 흔히 하는 말로 한 턱 쏘는 날이었다. 게다가 소수민족들의 관습상 생일이나 결혼 같은 기분좋은 날에 외국인이 참여하면 큰 행운(복)이 온다고 믿고 있어서 필자를 들먹이며 자랑을 곁들이기도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아닌 타지방 손님들은 경쟁하듯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알아듣지도 못할 본토 발음으로 정을 표시한다. 입술 근육이 아플 정도로 계속 웃음을 날려야 했고 제각금 들고 오는 술잔을 받아내야만 했다. 두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엔 취생몽사(醉生?死)! 아무데고 쓰러지고 싶을 만큼 취해 버렸다.
그렇지만 취한 모습은 보일 수 없는 일. 화장실을 가는 척 슬금슬금 비켜서다가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가 심하게 흔들어 깨우는 통에 눈을 떴다. 오늘의 주인공인 옥 선생의 어머니였다. 그녀 역시 몹시 취해 있었다. 손님들이 필자를 찾고 있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고 이끈다.
그의 간절한 눈빛에 이끌려 저항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억지로 일어나 몸을 추스리고 나가려는데 문고리를 뒤로 잡고 떡 버티고 섰던 그녀가 눈깜짝 할 사이에 무너지듯 안겨온다.
순간적으로 술이 확 깨어버린다. 그녀를 밀쳐내려고 하자 이번엔 두 팔로 내 목을 껴안으며 입술을 부딪쳐 온다.
그리고는 부르르 몸까지 떨더니 고개를 돌리고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망연자실(茫然自失)이 아닐까! 뒤따라 나가기도 그렇고 그냥 서 있자니 또 스스로 어색하기만 하다.
밖에서는 아직도 시끌벅적 웃음소리와 노래소리까지 들려온다.
#생일잔치인지 술잔치인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나가려니 기다렸다는 듯이 술잔 공격이 되풀이 된다.
우리나라의 장고와 비슷한 악기와 중국전통 악기 몇 개가 시끄럽게 울려퍼지고 분위기는 바야흐로 클라이막스에 이르른 것 같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축들이 필자를 원 안에 끌어들이고 함께 놀아보자는 눈치다.
이 무렵 진장(鎭長)과 부진장(副鎭長), 그리고 진(鎭)정부 간부들이 들이 닥쳤다. 손마다 선물꾸러미를 안고 옥 선생의 어머니에게 다가가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한다. 옥 선생도 온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이곳 저곳 음식나르기에 바쁜 모습이다.
눈 마주치기조차 어려운 그의 어머니는 잠시 전의 번갯불같은 장면을 잊은 듯 생글거리며 술잔을 권한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면서.
그날의 잔치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막을 내렸다. 주인공도 이미 어딘가에 누워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이웃 아낙네들이 뒷처리를 할 뿐이었다.
술이 취했다 깨었다를 반복하면서 필자는 두 번이나 집 밖 후미진 곳으로 나와 토하기까지 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학교운동장으로 향했다. 낮에 앉았던 자리에 가서 상의 겉 옷을 벗고 런닝 차림으로 밤공기를 쏘였다.
늦지 않은 시간이면 한 시간 거리의 布朗山 계곡 폭포에 가서 목욕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스스럼없이 옆에 앉는다. 어둠 속에서도 옥 선생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늘 즐거우셨어요?"
영어로 물어오는 玉 선생.
"오늘 우리 어머니가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것 같아요. 제 평생 오늘처럼 술 많이 드신 걸 처음 봤어요. 한국인들도 생일날 이런 잔치를 벌이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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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지라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운동화 매장이었는데 玉선생은 문간에서부터 한사코 입장 거부.
그녀를 무시하고 혼자 들어가서 진열해 놓은 운동화 농구화 등을 구경하면서 가격표를 보니 생각보다 비싸다.
몇 십 원짜리는 아예 없고 120元에서 600여 元까지 층층이 고급화된 것들뿐이다.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기웃기웃 하고 있는 그녀를 다시 불러 예쁘장한 운동화 한 켤레를 들어 보였다.
그녀는 운동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격표를 보더니 손사래를 친다.
280元이라는 정가표가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는가 보다.
가격대를 100元쯤 낮춘 곳에서 다른 것을 골라보여도 역시 거부의사만 표한다.
그래도 생전 처음 한 켤레 사주는 것인데 이정도는 되어야지 생각하며 180元짜리 중에서 하나를 골라 억지로 신겨 보았다.
거짓말처럼 꼭 맞는다. 임시 신어본 운동화인데도 금방 어린아이처럼 표정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니 기쁘기도 하다.
우물쭈물 할 사이없이 잽싸게 값을 치러버렸다. 순간적으로 당황하면서도 좋아하는 빛을 감추지 못하는 玉선생이다.
밖에 나오면서 이렇게 비싼 걸 사주셔서 고마워요. 사실은 시장에 가서 몇 십 元 짜리를 하나 사려고 맘 먹었었노라며 두고두고 오래 신겠다는 얘기까지 한다.
자주 못보는 딸아이에게 신발을 사준 것 같은 마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다음에 기회 있으면 더 좋은 것으로 사 줄께 하면서 마치 아버지가 딸에게 하듯 마음을 건넸다. 잠시후 그녀는 약속되어 있던 친구를 만난다며 돌아가고 필자는 北京路에 있는 50元짜리 호텔을 찾아갔다. 昆明에는 아무리 싼 호텔도 100여 元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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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소나 여관같은 곳은 값이 싸지만 외국인은 무조건 사절이다.
유일하게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외국인을 받고있는 이 호텔이 50元 밖에 안 하는 이유가 있다. 방은 그럭저럭 호텔기분이 나는데 비해 화장실과 샤워시설은 공동사용시설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이곳에 가면 서양인들이 득시글댄다. 동양사람들보다도 실용적인 이들에게 싼 호텔비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필자 역시 昆明에 오면 즐겨 찾는 호텔이기도 하다.
오늘은 호텔에 들어가면서 반가운 간판을 하나 발견했다.
공중목욕실이란 글자가 눈에 띄어서 가까이 가보니 글자 그대로 우리나라의 공중목욕탕이라는 얘기였다. 서둘러 호텔에 가서 여장을 풀고는 혹시나 싶어 수건과 비누만 들고 목욕실을 찾았다. 입욕료 8元. 가격도 저렴하다. 돈을 내고 옷장 카드를 받고 들어가면서부터 기분이 언짢기 시작했다. 응당 목욕탕이니까 벌거숭이들 세상은 당연한데, 팬츠 차림으로 담배를 물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한쪽에선 맥주파티, 또 한쪽에선 마작판이 벌어지는 등 분위기가 이상했다. 맨발로 다니는 사람,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까짓것 뜨거운 물에 몸이나 녹여보자싶어 온탕에 들어가 앉았다. 무엇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발바닥에 모래 같은 것도 밟혀온다.
떠다니는 것들은 사람들이 탕 안에서 때수건으로 태연하게 때를 밀고 있었기 때문이고 바닥에 이물질이 밟히는 것은 슬리퍼를 신은 채 탕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탕으로부터 탈출하듯 튀어나왔다. 샤워기로 달려가 몇 번 몸을 행구는 것으로 목욕을 끝내고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
8元이면 비교적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까워 죽을 판이다.
목욕탕이 아니라 땟물탕의 현장 견학 한 번 잘했다. 아무리 더럽다 더럽다해도 공중목욕탕에서의 작태는 심한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아직까지는 외국인들을 손님으로 받기엔 시기상조일 듯싶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께름직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샤워장을 다녀온 후에야 잠을 청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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