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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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8-01-2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그것만이-내세상650
병은 소문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겠지요. 기쁨은 함께 할수록 커지고, 슬픔은 함께 할수록 작아진다는 말도 있지요. 어려울수록 많은 사람 만나고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은 합니다. 막상 당해보니 쉽지 않더군요. 마음은 날고 싶지만, 상반되는 현실 앞에 자꾸만 고개가 떨궈집니다. 약한 모습 보이고 싶은 사람 어디 있겠어요. 모르게 움츠려 듭니다. 연락하거나 찾아주던 사람이 점점 뜸해지고 멀어집니다. 지인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먹는 것을 비롯한 행동이나 제반 활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지나 않을까? 상태가 불안하여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신체변화, 누가 되지나 않을까? 자신감 상실이 되지요. 함께하는 자리를 스스로 피하게 되더군요. 그런 상태로 5년여 지나다보니 대부분 연락두절입니다.

지난 토요일 저녁, 평소 존경하는 선배문인께서 필자 부부를 영화관으로 초대해주셨습니다. 두 부부가 함께 영화 감상을 하고,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초대 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융숭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해맑은 웃음을 선사해준 영화, 필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배려해준 식사, 근래 접하지 못한 곱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족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을 함께 감상하였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영화 몇 편 보았던 기억은 있으나, 어느 영화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어요. 특히나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 1937 ~ )과 탐 크루즈(Tom Cruise, 1962 ~ )가 주연한 「레인맨」과 전체 구성이 매우 흡사합니다. 가족이 해체되어 서로 모르고 살아온 형제, 모든 게 다른 형제가 서로 하나가 되어가는 내용이 그렇습니다. 형과 아우가 바뀌었으나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같지요. 레인맨에서는 아우가 형 앞으로 되어있는 재산을 빼앗으려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의 형은 건달이지만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세대를 대표할 만한 배우 윤여정, 이병헌, 박정민이 출연합니다. 더스틴 호프만이은 탁월한 성격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요. 출연자들 모두 그에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성격배우로도 돋보이는, 그동안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 신선하더군요.



프로복싱 동양웰터급 챔피언을 지낸 전직 복서로 등장하는 조하역의 이병헌, 동네 골목길에서나 마주칠법한 허접한 모습, 망가진 모양으로 시종일관 합니다. 윤여정은 경상도말 쓰는 두 사람 어머니로 나오는데요. 경상도말 익히기 위해 3 ~ 4개월 동안 경상도 사람과 함께 살았다는군요. 서번트증후군 앓고 있는 둘째 아들 역은 박정민이 맡습니다. 연기도 대단하지만, 오랜 시간 맹렬한 피아노 연습으로 컴퓨터그래픽이나 대역 없이 연주장면을 촬영하였답니다. 연주 경험 없는 사람이 건반위치와 순서를 우직하게 외워 연기한다는 것이 가능한가요? 9곡이나 해냈다는군요.

혼자 살아온 조하(이병헌 분)가 우연히 17년 전에 헤어진 어머니 인숙(윤여정 분)을 만나 셋방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 이면이랄까요? 잘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그늘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을 청량한 웃음으로 그려냅니다. 언제고 떠날 준비 하고 있는 조하와 서번트증후군 앓는 동생 진태(박정민 분)가 진짜 형제가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극중 인물로 완벽히 변신한 배우들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음악도 아주 좋았습니다. 음악과 영상이 하아모니를 이루어 감동을 배가 시키더군요. 가슴이 벅찼습니다. 쇼팽 '즉흥 환상곡', 드뷔시 '아라베스크 No.1'등 친숙한 선율의 클래식 명곡, '동네 형아', '엄마 같이 가요' 등이 배경음악으로 나옵니다. 황상준 음악 감독에게도 관심이 가더군요.

언제부턴가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자주 화제가 되었습니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내용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부터 매달려 선호하는 이들이 그것을 보았음을 인증받기 위해 SNS에 올리고 강권하는 행태, 전체주의 국가에나 있을 법한 일들에 경악했습니다. 호불호를 떠나, 픽션fiction과 팩트fact를 구분 못하는 사회가 안타까웠습니다.

눈과 귀뿐 아니라, 온몸을 즐겁게 하는 영화더군요. 너무나 웃어 눈물을 질질 흘리며 보았습니다. 글을 쓰려 뉴스를 보니 박스오피스 1위가 되었더군요. 영화를 알리기보다 웃음을 전염시키려 소개합니다. 욕설이 더러 나오지만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에 갇혀 사는 사람, 작은 관심이 세상 속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재삼 깨우쳤습니다. 갇혀 사는 사람이 정신질환자뿐이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세상을 등지거나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더군요. 필자의 처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보니 내용이 더 마음에 와 닿는 모양입니다. 견고한 담장 안에 갇힌 사람, 이끌어 내 주시려 손잡아주신 선배문인께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상으로의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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