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온 마순원은 조사를 해보았자 아는 것이 없었다. 고의로 범행을 부인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 대사관에서는 연일 순원에 대한 조사를 조속히 끝내고 신병을 인도하라는 압력이 계속되었다.
한국의 22세기미래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쉬뢰더3세를 통하여 순원은 이번 연구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강한 어필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제프는 한 수 더 떴다.
깐깐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외교 문제로 비화시키겠다며 제프에 대한 수사를 문제 삼았다.
제프는 순원과는 사뭇 달랐다.
순원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답변일색인데 반하여, 제프는 튜라플리네스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연구진을 동시에 비난하면서 그는 그릇된 유전공학기술로 인해 괴물이 태어났고, 그 괴물이 보복을 한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였다. 쉬뢰더씨는 시체를 인간으로 복원해 내 애인을 살해당하는 불행을 맛 본 프랑켄슈타인의 운명을 밟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푈더가 순원과 한국연구원들에 대한 조사를 단념하지 못하게 하는 단초를 제프는 끊임없이 제공하는 셈이었다.
거기에 지금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사람이 와 면담을 요청하고 있었다.
사건을 단기간 내 끝내지 않으면 이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한국, 미국, 일본.....
고민스러운 것은 과학수사연구소의 검사결과였다.
사망자의 혈액에서 독물이 검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검출물은 이산화탄소와 혼합된 독성이었는데, 문제는 혼합되어있는 그 독성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독성물인 것 같다는 것이 연구소 측의 보고였다.
하지만 온실에 있는 튜라플리네스에서는 이산화탄소 외의 다른 독성은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꽃의 향기를 분석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때 푈더는 일본 영사와 서장과의 면담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까무라입니다."
"푈더입니다."
만나자 마자 간단히 수인사를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까무라 영사는 지금 출국금지 중에 있는 나리코의 출국금지사유와 그 해제시점을 분명히 해달라는 은근한 압력과 함께, 나리코는 식물에 관한 커무니케니션을 전공하고 있는데 순원과 순원의 어머니, 제프 그리고 수사관이 동석한 가운데 연구실의 튜라플리네스에 대해 조사를 하고 싶으니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리코의 요청사항은 해괴했다.
쉬뢰더씨의 연구실을 개방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프리드리히는 거절하고 싶었다. 수사란 주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로 인해 나중에 또 다른 외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서장의 지시도 일리가 있었다.
푈더는 일본 영사의 요청을 수락하였다. 어차피 수사의 딜렘마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나리코는 송원희와 함께 옆구리에 무슨 기계를 가지고 쉬뢰더씨 연구실로 나타났다.
순원과 어머니 송원희.
세상의 어머니는 다 그러하리라.
아들을 두 팔로 껴안고 다시는 안 놓아 줄 것인 양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목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그러한 모자의 모습을 보면서 제프와 푈더 그리고 이들 일행은 삼엄한 경찰의 경비를 열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쉬뢰더씨의 연구실은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었다.
숨지기 전까지도 튜라플리네스를 관찰하고 있었던 듯, 연구실의 창가며 책상이며 카페트의 구석구석마다 튜라플리네스는 조각이 모셔지듯 화분 받침위에 단정하게 놓여져 있었다.
연구실의 가운데는 예의 그 아름다운 축소판 일본식 정원이 단아하게 조성되어 있었고, 여전히 다양한 수생식물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
튜라플리네스는 주인이 죽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여전히 그 빼어난 자태와 향기를 보란 듯 자랑하고 있었다.
일행은 일제히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나리코는 곧 연구실에 있는 튜라플리네스 한 그루를 플라워테레스코우프에 연결하였다.
나리코의 노크가 시작되었다.
묵묵부답.
온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꽃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리코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미련없이 이번에는 플라워테레스코우프를 비란코 상에게 장치하였다.
"비란코 상 안녕."
모니터에 반응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안녕."
모두들 이 광경을 신기하게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무슨 냄새가 나지요?"
비란코 상이 이윽고 답변했다.
"좋으면서 무서운 냄새요."
"무서운 냄새가 여기서 나나요?"
"그래요. 무서워요. 답답해져요. 죽습니다."
모두들 긴장하였다. 특히 순원과 제프는 얼굴이 석고같이 굳어져 비란코 상의 파장을 바라보았다.
"무서운 냄새는 바다에서 나오나요?"
"그래요."
"여기에는 바다가 없는데?"
비란코 상은 또 시간을 끌었다.
"가까이 있어요."
연구실에 멀지 않은 북해바다를 말하는가?
"그 바다에서 냄새가 지금도 나오나요?"
"지금도. 약간. 이 방에서."
"이 방에서?"
"녜. 이 방에 바다가 있어요."
모두들 얼굴을 두리번거렸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순간 제프의 얼굴이 살짝 변하더니,
"지금 무엇들을 하시는 겁니까? 식물이 범인이라도 잡아낸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슨 무당하고 대화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프리드리히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식물이 무슨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때 순원이 소리를 쳤다.
"잠깐만. 어머니 저 실내 정원 물을 컵에 떠 와 보세요."
어머니는 시키는대로 하였다.
"맛 좀 보세요."
"어머, 짜구나."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간 순원은 제프를 바라보았다.
제프의 푸른 눈과 순원의 까만 눈이 스파크를 일으키듯 맞부딪쳤다.
식물학의 천재와 물리학의 천재의 두 눈빛이 별빛같이 반짝였다.
한참을 응시하던 끝에 순원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럴 수가, 그럴 수가, 당신이 그럴 수가...."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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