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리코도 의아하기만 했다.
더욱이 아들을 타국에서 체포당한 저 어머니의 심정이야 무슨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나리코는 어제도 아버지 후루마쓰에게 이메일을 넣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로부터는 답이 없었다.
일본으로 가는 항공편예약을 취소하고 하염없이 롯지에 있으려니 나리코 또한 기가 막혔다.
그런 망연한 상태에 있을 때 순원의 어머니가 찾아 온 것이다.
"나리코 아가씨. 플라워텔레스코우프가 무언지 다시 한번 설명해 주세요."
"예. 꽃과 대화를 나누는 기계입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지요?"
"뭐든지. 하지만 꽃이 사람들 말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요."
"저 꽃과 대화를 나누나요?"
송원희는 나리코의 플라워텔레스코우프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동양란 하나를 가르켰다. 비란코 상이었다.
"저 난 뿐만이 아니예요. 무슨 식물이든 가능하면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그래요?"
신기하다는 듯 보았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지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송원희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어요."
"그러면 플라워텔레스코우프로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튜라플리네스인가 뭔가 하는 꽃과 대화를 해보면? 튜라플리네스는 알 것 아니에요? 누가 쉬뢰더씨의 범인인지?"
나리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까지 그는 네덜란드어와 영어등을 플라워텔레스코우프에 입력하기 바빴지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아! 그렇겠군요. 어머니. 튜라플리네스와 대화를 나누어 보면……."
하지만 문제는 튜라플리네스를 입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튜라플리네스는 그동안에도 철저한 보안 속에 쉬뢰더씨의 연구실이나, 전용 온실 밖에 없었는데, 연구실은 이미 수사중으로 폐쇄되었고, 온실 또한 농무성에서 봉인을 하여 입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온실에는 독기를 품어낸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는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나리코와 어머니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눈빛을 주고 받았다.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었던 것이다.
송원희와 나리코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북해의 봄은 밤이 일찍 찾아왔다.
라이덴 연구소의 불이 다 꺼지고 어둠이 연구소를 덮자, 나리코와 송원희는 소리없이 온실로 향하였다.
예상한 대로 온실에는 봉인을 위한 폴리스라인만 쳐져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온실의 자물쇠를 간신히 비틀어 벗겨낸 뒤 두 여인은 온실 안에 가득 피어있는 튜라플리네스로 향하였다.
온실에 들어선 두 여인은 꽃을 보았다. 꽃을 보는 순간 송원희는 진저리를 쳤다. 바로 저 꽃들이었던가?
꽃의 향기가 전해졌다.
두 여인은 서둘러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서둘러 나리코는 플라워텔레스코우프를 튜라플리네스의 잎과 꽃에 장착하였다.
무슨 언어로 할 것인가?
나리코는 잠시 망설였으나 그녀는 플라워텔레스코우프, 아니 식물들의 예지 능력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말이 아니라 감정으로 대화하는 것이므로…….
무슨 말부터 물을 것인가?
나리코는 빛과 물에 가장 민감한 식물들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안녕? 어두운가요?"
"……."
반응이 없었다.
"목이 마른가요?"
나리코는 스스로 목마른 기분에 최대한 몰입하면서 천천히 물었다.
"……."
여전히 답이 없었다.
송원희는 이해할 수 없는 나리코의 동작을 보면서 숨죽이며 지켜만 보고 있었다.
튜라플리네스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점점 꽃의 향기가 마스크를 뚫고 진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나리코는 필사적으로 다시 물었다.
"춥지 않아요?"
"……."
"무서워요?"
튜라플리네스는 끝까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두 여인의 노고는 수포로 돌아가는 듯 하였다.
나리코가 말했다.
"안되겠어요, 이러다 중독될지 모릅니다. 일어서야 합니다."
송원희는 하는 수 없이 나리코를 따라 온실을 나오고 말았다.
허탈하였다.
다시 연구소로 돌아온 나리코는 도대체 튜라플리네스가 왜 반응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물과 식물의 결합체이기 때문인가?
송원희는 기대를 많이 했었던 듯 연구실에 들어오자 실망감에 무너지듯 소파에 앉았다.
순원이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 희망이 없었다.
눈앞에 절벽이 있는 듯 했다.
망연히 있던 나리코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만 한가지 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뭔데요?"
나리코는 말없이 플라워텔레스코우프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비란코 상에게 다가갔다.
"비란코 상. 미안해요 제발 부탁합니다. 진실을 말해주세요."
기도하는 듯, 또는 속삭이는 듯 말을 하며 나리코는 비란코 상에게 플라워텔레스코우프를 장치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렸다. 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을 것 같던 비란코 상. 드디어 플라워텔레스코우프의 모니터에 가느다란 실 같은 곡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안 추워요."
"목은 안 말라요?"
"괜찮아요."
아, 비란코 상. 고맙게도 말문을 열어주었다.
"냄새가 나지 않아요?"
"납니다."
"무슨 냄새"
"좋고도 무서운 냄새예요."
좋고도 무서운 냄새?
비란코 상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나리코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별안간 나리코가 빠른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여기 계세요."
나리코는 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재빨리 움직여 연구실을 빠져 나갔다. 이윽고 다시 돌아온 나리코의 손에는 튜라플리네스가 한 그루 들려 있었다. 온실에서 빼온 것이었다.
"비란코 상. 다시 말해봐요. 무슨 냄새가 나는지. 옆에 있는 이 꽃에서 무슨 느낌이 오는지 말해줘요."
"좋은 냄새가 납니다."
"독이 아니고요?"
"좋고 좋은 냄새입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느낌이지요."
좋은 냄새? 나리코는 송원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산화탄소?"
"그렇습니다."
튜라플리네스의 몸에서 이산화탄소 느낌이 온다는 것이었다.
나리코는 머리가 복잡했다. 사람들에게 이산화탄소는 냄새가 없다.
비란코 상은 느낌과 냄새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겠지.
튜라플리네스.
그렇다. 온실속의 튜라플리네스가 품어내는 가스는 이산화탄소였다. 그것이 사람을 죽게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 정도의 양으로는. 하지만 꽃의 고유한 향기와 아울려 튜라플리네스의 향은 독향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꽃의 향기만을 분석한 결과 향기에는 독성이 없었다. 그런데 독향으로 쉬뢰더씨가 죽었다?
네덜란드 범죄과학연구소에서 검출한 결과는 바로 이것이었다.
튜라플리네스가 내는 이산화탄소와 혼합된 독향만으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 다른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나리코는 순원을 체포한 경찰이 이해가 갔다.
알 수 없는 제3의 요인이 있는 것이었다. 쉬뢰더씨의 죽음에는...
나리코는 빠른 어조로 송원희에게 이런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는 더욱 몸을 떨었다. 꽃이 범인이 아니라면 아들의 혐의는 더욱더 짙어진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나리코가 다시 비란코 상에게 다가갔다.
"무서운 냄새란 무엇이죠?"
"무서워요. 아파요. 죽습니다."
두 여인은 동그란 눈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디서 나죠? 그 무서운 냄새는? "
이번에는 비란코 상이 시간을 끌었다.
한참만에야 비란코 상은 말했다.
"바다...."
바다에서 무서운 독이 퍼진다는 것인가? 도대체 비란코 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무언가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은 점점 미궁에 빠졌다.
땅이 꺼지는 한숨을 쉬던 송원희가 무엇인지 생각났다는 듯이 나리코에게 물었다.
"쉬뢰더씨가 죽은 곳이 어디라고 했죠?"
"연구실입니다."
"연구실이 바다근처에 있나요?"
"아닙니다."
"연구실에도 튜라플리네스가 있었나요?"
"물론이죠."
누가 먼저랄 것이 없었다. 두 여인은 동시에 연구실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연구실은 경찰이 폐쇄 중이었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가 없다.
나리코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송원희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르고 다급한 일본어로 나리코는 통화를 했다. 상대방은 주 네덜란드 일본 대사관이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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