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욱 한밭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
2014년 6월 5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프레스 콘퍼런스를 열고 가정용 로봇 ‘페퍼’(pepper)를 선보였다. 페퍼는 소위 인간형 로봇이라고 하여, 지능을 가질 뿐만 아니라 감정과 연민을 표현할 수 있는 로봇으로 당시 출시될 때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더군다나 이 로봇은 가격이 200만원 정도로 능력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다고 할 수 있었으며, 지속적인 학습으로 페퍼를 구입한 사람(가족)들을 인식해 스스로 행동하는 양식을 만들어간다는 인공지능 로봇의 특징을 가진다.
이후 2014년 말 아마존에서는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가 출시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나 통신회사 등이 이와 유사한 제품들을 출시돼 유행하고 있다. 나아가 국내 (주)퓨처로봇과 같은 회사에서는 퓨로(Furo)라는 페퍼를 뛰어넘는 서비스 로봇을 만들어내고 있어 로봇의 대중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제 진정한 로봇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간의 신체적인 한계를 도와주기 위해 개발돼 제조업 중심으로 제품의 대량생산에 사용되는 산업용 로봇 정도가 그동안 로봇으로 인식됐으나, 이제는 인간의 지능적 한계뿐만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는 로봇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나아가 인공지능형 무인자동차나 드론도 지능형 로봇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와 같은 터미네이터형 로봇, 아바타형 로봇도 나타날 수 있는 수준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있다.
이러한 로봇시대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할 수 있다. 우선 페퍼와 같은 서비스로봇의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나 질수록 사람들은 다른 타인보다 로봇과 오히려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그 결과 타인과의 유대감이 약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로봇 애완동물에 대한 지나친 친밀감으로 이들을 인간과 같이 대우하는 사회현상이 벌어지기도 하고 있다.
자율주행 무인자동차의 경우 많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직까지 트롤리 딜레마(자동차가 인명사고를 피할 수 없을 때 희생자 선택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와 같은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를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지능형 로봇이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은 중동의 전쟁에서 무인 드론 폭격기를 이용해 목적하는 성과를 거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아가 최근에는 인간을 대신하는 다양한 전쟁용 로봇이 개발되고 있는데, 이들이 스스로 판단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를 한다면, 과연 인류의 안전과 평화는 보장받을 수 있는지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잡한 윤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지능형 공장(스마트 팩토리라고 보통 불린다)과 같이 다양한 로봇기술이 적용된 공장이 일반화하고, 의학이나 미용과 같은 서비스업에서도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노동권을 로봇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면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상 언급한 내용을 포함해 학계, 정부 및 산업계에서는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로봇(인공지능) 윤리헌장을 제정하려는 일이 추진되고 있어 조만간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학회라 할 수 있는 전기전자공학회(IEEE, Institute of Electi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윤리지침(EAD, Ethically Aligned Design)을 2016년부터 제시하고 매년 개정판을 내고 있다. 또한, 이 EAD 지침을 기반으로 IEEE에서는 산업계에 추후 사용될 인공지능 윤리 표준 구성작업도 시작했고, 필자를 포함한 세 명의 한밭대 교수들이 이 표준 구성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한밭대학교에서는 올해부터 ‘인공지능윤리’라는 교과목을 국내 최초로 개설해 로봇시대 인성교육의 바탕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는 인간이 정말로 로봇과 함께 공존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여야 할 시기에 도달한 것이다.
최병욱 한밭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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