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옥선(세종교육청 교사) |
"잘 지내시죠, 선생님? 매년 스승의 날마다 선생님 생각 많이 났는데 바쁘단 핑계로 연락을 못 드렸어요. 죄송해요. 건강하시죠?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셨다고 들었어요. 선생님, 많이 보고 싶어요. 3학년 때 제일 재밌고 행복했거든요. 우리반만 모여서 뮤지컬 보러 간 날 선생님이 손편지 써와서 아이들 모두에게 나눠주셨잖아요. 저 그 편지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10년만의 전화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낯설었지만 반가웠다. 여전히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를 담임선생님이라고 불러준 첫 제자, 예원이였다. 갓 신규교사 티를 벗은 교직 2년차에 나는 처음으로 담임을 했다. 예원이는 내가 맡은 3학년 10반의 부회장이었다. 겉으로는 늘 밝고 당당한 여장부였지만 속으로 끙끙 앓으며 누구보다 힘겹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여러 번의 상담을 하며 나는 예원이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었다. 힘들어 울면 안아주었고, 휘청거리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처음이기에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열정적이었고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열정과 노력을 알아주고 지금까지 기억해주는 제자가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예원이와의 통화를 마치고 오랜만에 졸업앨범을 꺼내보았다. 33명 아이들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다. 열여섯 소년 소녀들은 이제 스물여섯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스물여섯의 젊은 담임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두 번째 학교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은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육아에만 전념하다 보니 내 이름도, 내 직업도 잊은 채 살게 되었다. 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스승의 날이면 간간이 안부 문자를 보내주던 제자들의 소식이 뜸해지고 나는 세상에서 멀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을까. 나와 함께했던 그 제자들은 잘 살고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과 애틋한 그리움은 해가 갈수록 더해졌다.
예원이의 전화는 그런 나에게 선물과도 같았다. 그리웠던 제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싶어졌다. 다가올 성탄절과 큰 아이의 생일파티 준비로 한창 분주했던 연말의 어느 날, 나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세종시교육청 중등교원 전입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드디어 복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태어나고 자라 학창 시절을 보낸 내 고향 세종에서 말이다.
2018년 새봄, 나는 오래 기다림 끝에 내 고향 세종의 어느 학교, 어느 교실에서 저마다의 빛깔을 품은 작은 새싹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따스하고도 설레는 첫 만남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성옥선 세종교육청 국어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