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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이란 어떨까. '지금' 이라는, 순간으로 충만한 삶은 가치를 잃을 것이다. 말 그대로 남는 것이 시간인 인생이 주어진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과 놓쳐선 안 되는 순간이 있음을 우리는 잊어버릴 것이다. 죽음은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지만 역시 두려운 일이다. 세계 제일의 갑부라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라도 죽음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삶을 마무리해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 질문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유럽의 지성과 문학의 거장들이 답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진보 주간신문인 <차이트>의 문예부 편집자인 이리스 라디쉬(Iris Radisch)가 엮어 낸 책 '삶의 끝에서 나눈 대화'는 한 시대와 인생을 통찰한 작가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시대적·문화적 성찰을 담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 임레 케르테스, 파트릭 모디아노 등 18명의 거장이 어떤 미화나 포장없이 스스로 느끼는 '나이든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모디아노는 "우리는 늘 단면들만 볼 뿐, 인생 전체는 매우 기이한 것이다"며 "마지막에 가서 한꺼번에 그 전체를 본다면 그것도 매력적일 것"이라 말했고 아모스 오즈는 "인간은 누구든 일종의 마트료시카 인형이어서 앞서 간 세대의 정신적 외상, 염원, 실망을 함께 지니고 다닌다"고 대답한다. 각자 경험한 삶의 결이 다양한 회고를 낳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채로운 성찰로 빛난다.
한권의 책도 저마다의 생이 있는 법이다. 거장들의 삶이 끝나도 그들의 글은 더 오랜 삶, 혹은 불멸을 살 듯 이 책도 읽기를 끝낸 누군가에게 오랜 사유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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