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미쓰 뿌랑주(布朗族)와의 인연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 미쓰 뿌랑주(布朗族)와의 인연

34. 천 년 한을 노래로 달래는 뿌랑족(布朗族)

  • 승인 2018-01-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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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넷 캡쳐
#조촐하지만 감동적인 점심상

담임선생인 왕자오잉(玉叫?)은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은 채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시간을 마치고 나가려하자 학생들이 일제히 뛰어나오며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매달린다. 학교 정원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 글자 그대로 꽃동산이다.

차례대로 모델이 되어 주고, 그룹별로 찍었으며, 단체 촬영도 했다. 玉叫?선생은 만면에 미소가 떠나지가 않는다. 그러나 결코 서두르거나 소리지르는 법도 없다. 학생들이 이끄는 대로 응해줄 뿐이다. 자애로운 여선생의 모습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게다가 드물게 보는 미인이다. (수십 여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훗날 카메라를 날치기 당하면서 그 안에 있던 사진들까지 통째로 없어진 것이 두고 두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 날 학교장이 점심 초대를 했다. 그들로서는 최고의 귀빈을 대접하느라 준비를 한 모양인데 제대로 된 식당이 없는 지역이다보니 버스 종점 부근의 선술집 비슷한 곳에 음식을 차려 놓았다.

닭요리에 몇 가지 나물 종류와 그들이 즐겨 마시는 미주(米酒)가 전부였지만 대도시에서의 진수성찬 보다 몇 배 더 감동적인 자리였다.

학교장이 좌중을 소개하는데 여선생이 셋, 남자선생이 네 명으로 하나같이 명랑한 성격들이어서 분위기는 처음부터 화기애애하다.

술 잔이 돌고 도는데 아무도 사양하는 법이 없다. 오후 수업이 은근히 걱정될 정도로 마시고 있어서 슬쩍 옆자리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은 웃음을 띠면서 요즘은 농번기가 되어서 아예 오후 수업은 없다고 한다.



#담임선생은 뿌랑족 대표 미인

그리고 왕자오잉 선생을 가리키며 저 선생이 지난 해 소수민족 뿌랑족(布朗族)의 대표 미인으로 선정된 여성이라고 말한다.(어쩐지 미모가 남달라 보인다 했더니 역시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였구나!)

중국에는 매년 북경(北京)에서 56개 민족 미인대회가 개최되는데 이 행사는 소수민족들에게 많은 얘기거리를 만들어주는 최고 최대의 흥미있는 뉴스라고 한다. 전국대회가 열리기 전에 56개 민족은 나름대로 이 대회에 출전할 대표미인을 선발한다고 한다. 그런후 대회 한 달 전에 북경에 올라가 각 메스컴에 소개도 되고 출전준비를 한다는 것.

여기에 왕 선생은 연거푸 3년을 뿌랑족 대표미인으로 선정되어 북경대회에 참가했을 정도이니 몸매와 얼굴이 어느정도 화사했는지 상상하고도 남는 일이다. 의상도 활동복 그대로이고 화장기라곤 하나도 없는 얼굴에 검은 머리는 손쉽게 둘둘 말아 얹혀 있다.

그러나 척 보기에도 아름다움과 귀품이 넘쳐 흐른다. 이 미인대회는 한국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와 비슷한 양상이지만 처녀 비처녀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허기야 성적으로 조숙한 중국 여성들에게 처녀대회는 쉽지 않을 터이지만 말이다.)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앉아서 보니 정말 예쁜 얼굴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검고 깊은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에 긴 속눈섭까지 매력이 철철 넘치는 인상이다.

160㎝정도의 알맞은 키에 잘록한 허리, 볼륨있는 앞가슴이 매혹적이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천연미인이란 표현이 알맞을 것 같다.

말 수가 적지만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간간히 한 두 마디씩 하는 것 역시 잔잔한 목소리다. 풍성한 화제가 오가는 가운데 교장이 넌즈시 물어온다. 지금 필자가 묵고 있는 촌장집은 전통적인 뿌랑족 가옥이라 옛 모습을 볼 수는 있겠지만 3대 가족이 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불편하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선뜻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머뭇거리고 있으려니까 이미 이 쪽 마음을 다 읽었다는 듯이 숙소를 바꿔볼 생각은 없느냐고 재차 물어온다.

그럴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되물으니까, 만약에 옮길 생각이 있다면 즉시 알아봐 주겠다고 한다.

고맙다고 대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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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넷 캡쳐
그리고 다시 도수 낮은 미주(米酒)가 몇 순배 돌았다.

점심 겸 술자리가 파할 무렵, 교장과 왕 선생이 잠시 자리를 뜨는 눈치였는데 금방 되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교장이 환한 얼굴로 필자를 바라보면서 만사 OK라고 간단히 얘기를 한다.

무슨 의미인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으니까, "조금 전에 얘기했던 숙소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왕 선생 집이 크고 방도 여러 개가 있어서 부탁했더니 쾌히 승락을 합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숙소를 옮기실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매일 저녁 젊은 부부나 촌장 내외 간의 운우지정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부터가 무언가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온 정성을 다해 필자를 예우하려는 촌장네 집을 당장 떠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이나 더 있다가 왕 선생 집으로 옮겼다. 옮기면서 촌장에게는 학교 선생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아서…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촌장은 "아이고 그것 참 잘 되었습니다. 우리집은 방도 협소하고 또 음식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더 편안히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라며 오히려 미안해 한다. 정작 미안한 것은 필자였는데.

왕 선생 집으로 옮기고 보니 제대로 된 숙소에 온 기분이다. 우선 넓은 정원에 수 백 그루의 꽃들이 만발했고 정원을 중심으로 방이 다섯 개나 있었다.

식구는 왕 선생의 모친과 단 둘이 살고 있어서 무척 호젓한 분위기였다. 왕 선생의 모친은 50대 중반으로 역시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었는데 20대부터 지금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고 했다. 왕 선생의 부친은 10년 전에 뿌랑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독사에 물려 치료도 변변히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버렸다고 했다.

모친과 왕 선생이 각각 방 하나씩을 사용하고 있었고 필자는 제일 가장자리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미리 얘기가 되어서인지 침대보도 새 것으로 덮여 있었고, 커텐도 새로 만든 것 같았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단조로움이 오히려 편안한 마음을 갖게 했다. 창문 쪽에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골동품처럼 보이는 꽃병에 안개꽃과 붉은색 칸나 몇 송이가 꽂혀 있다.

밥도 하고 빨래며 청소를 하는 아줌마가 한 분 있는데 그녀는 이웃에 사는 분으로 이른 새벽에 와서 늦은 밤에 돌아간다고 했다.

겉으로는 일체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도 필자에 대한 소홀함이 없도록 하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미쓰 뿌랑주(布朗族) 왕 선생집으로 숙소를 옮긴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왕 선생은 소수민족으로서의 자긍심도 강했지만 아는 것도 많아서 취재 안내자로서는 최고의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비교적 조용한 성품이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양적인 모습이었고, 내면적으로 무척 정열적인 기질을 품고 있었다. '하면 하고 말면 만다'는 식의 단호함도 엿볼 수 있었다. 반면에 그녀의 모친은 무척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남녀간의 체면치례같은 것도 없다. 불쑥 불쑥 필자의 방을 드나드는 데 오히려 이쪽이 난감할 지경이다.

이사를 온 지 며칠 쯤 지나서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아침부터 집안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잠시후 玉 선생의 얘기로 알게 되었는데 오늘이 어머니의 생일이라는 것이었다. 점심시간부터 손님을 맞이할 생각으로 음식준비 때문에 이웃의 아낙네들이 모여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왕 선생의 모친이 달려왔다. "작가 선생님! 오늘은 취재하는 일 하루쯤 쉬시면 안될까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준비하고 있고 또 좋은 친구들도 많이 올 터인데, 소개해 드릴게요." 중년부인답지 않게 애교가 잘잘 흐른다.

뒤따라 온 왕선생도 그의 어머니를 거든다.

"김선생님, 그렇게 하세요. 오늘 꼭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이 한 분 오시거든요."

"그분이 누군데요?"

"이따가 오시면 인사하면서 소개해 드릴게요."

이들의 말을 듣고도 고집스레 나갈 배짱은 없었다. 다시 작은 가방과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숙소와 가까운 학교로 향했다. 소년들 몇 명이 볼을 차고 노는 외에 조용하기만한 운동장 한 쪽 벤치 위에 앉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돌로 의자를 대신하도록 놓여져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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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넷 캡쳐
뒤늦게 필자를 발견한 소년들이 공놀이를 멈추고 곁으로 모여든다.

맑고 밝은 천진스런 소년들이다. 소년 소녀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한창 자랄 나이에 영양이 부족한 표가 여실히 나타난다.

그래도 행복한 모습들,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하고 맘속으로 기도해 본다.

곁에 와서 이것 저것 묻는데 그들의 언어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평소에 보통화를 쓰지 않고 자기들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통화라해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소수민족의 언어는 더욱 힘든 일이다.

필자에게 결혼했느냐고 묻는 아이들.

그들에게 미소로만 답해줄 뿐 뾰족한 수가 없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왕 선생.

슬며시 내 곁에 앉아 아이들과 무슨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재밌느냐고 묻는다.

전혀 알아듣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니까 왕 선생이 통역을 한다.

아이들에게 묻고 싶은 얘기를 차례대로 하라고 하니까 한 녀석이 대뜸 한국이란 나라가 여기서 얼마나 먼 곳이냐고 묻는다. 질문 내용을 필자에게 통역을 하고 답변은 왕 선생이 직접 하는 눈치다. 또 다른 녀석 왈 "결혼은 했습니까" 배꼽 잡고 웃을 일이다. 60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결혼이라니?

왕선생도 웃고 나도 웃었다.

필자의 나이를 얘기해 주니까 녀석들은 일제히 뿌쌍신, 뿌쌍신! (不相信)하며 외쳐댄다.

얘기 끝에 왕 선생에게 물었다. 숙녀에게 실례의 질문인줄 알면서도 "왕 선생! 결혼은 언제 계획이 있습니까?"

대답대신 필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냥 고개를 떨군다.

앗차! 공연한 질문을 했나보다. 하고 후회가 된다. 그런데 곧 밝은 얼굴로 변한 玉 선생이 흔쾌히 대답을 한다.

"전 이미 결혼했어요."

"그럼 남편은……?"

"그 사람은 지금 먼 지방에 나가 있어요. 요즘은 아마 산동성에 있을 거예요." 그 다음은 더 물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왕 선생의 사적인 얘기는 며칠 후 그의 모친에게서 듣게 되었다.

몇 년 전 이 지역에 5일장이 서던 어느날, 외지에서 왔던 총각이 왕 선생에게 첫눈에 반해 죽을 둥 살 둥 매달려 동거를 시작했는데 한 1년은 열심히 살며 재밌게 지내더니 그의 감추어져 있던 도박습관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 그를 말리는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더란다. 그래도 왕 선생은 꼭 참고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고 한다.

도시 여성 같았으면 갈라서도 열 번은 더 갈라섰을 남녀관계가 아니었을까.

그래도 왕 선생은 한 번 맺은 남여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한 채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불쑥 나타난 남편은 며칠간은 잘 지내다가는 술독에 빠진 사람처럼 곤죽이 되어 왕 선생을 구타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미쓰 뿌랑주(布朗族)로서의 권위와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천성이 곱고 긍정적인 소유자인 왕 선생은 누가 알세라 쉬쉬 해가며 남편의 성정이 올바로 바뀌어 질 날을 꿈꾸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전후 사정 얘기를 다 듣고난 후 그녀를 바라보면서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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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 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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