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첫 번째 자투리.
뒤에 누가 탈 것 같을 때,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게 매너라고들 한다. 그런데 가끔은 문을 빨리 닫고 먼저 올라가는 게 더욱 적절한 매너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거리감이 애매할 때 특히 그렇다. 나는 이미 현관을 통과했다. 누군가 현관 앞에 주차하고 막 내리려는 중이다. 정리할 것이 있는지 꾸물거린다. 나는 방금 전에 그 옆을 지나갔다. 분명 서로의 존재를 알아챘지만, 얼굴은 확인하지 않는다. 시간 간격은 좀 벌어져 있다. 막상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주자니 여전히 시야에 보이질 않아 올지 안 올지 모르는 타인. 심지어 바깥이 조용하다. 현관의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라도 날 법한데, 그럴 기미조차 안 보인다.
그가 고의로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 당신도 혼자 올라가고 싶구나. 내가 먼저 올라가길 바라는구나. 당신도 타인의 숨소리가 크게 의식되어 괜히 자신의 숨소리를 단속하게 되는 긴장이 싫구나. 당신도 좁은 공간에서의 밀착적 단절과 고요가 어색하구나. 그 순간, 관계회피에의 소심한 욕구가 역설적으로 그의 마음과 공명한다. 나는 얼른 닫힘 버튼을 누르며 그를 배려했다고 느낀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오해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자투리.
보통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지만 어쩌다 받게 되었다. 기계적으로 터져 나올 광고와 호객의 말들을 약간 긴장된 상태로 기다리다가 최소한의 확인이 되면 끊을 태세였다. 몇 초의 고요가 흐르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듯 앳된 목소리의 텔레마케터가 어색하게 입을 연다. "저... 으음, 고객..님?"
다다다다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스팸 전화의 본 목적을 잃고, 제 성품과 연령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고 마는 그녀의 행간에, 그러니까 그 노동의 성격과 젊음에 나는 왜인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침묵하는 텔레마케터, 머뭇거리는 텔레마케터, 수줍은 텔레마케터라니 - 신선하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그보다 더 빠르게 "죄송합니다" 툭 내던지고 곧바로 끊어버린 내가 좀 싫어지기까지 했다면, 싸구려 감상일까. 그 아이가 한 문장의 말도 채 완성하기 전이었다. 전화가 끊긴 저쪽에서 어떤 표정이었을지 자꾸만 생각해보게 된다. 무심하게 다음 전화를 걸었으려나. 망설이는 텔레마케터라는 연약하고 이상한 캐릭터로부터 온라인 저편에 존재하는 사람을 실감했다.
세 번째 자투리.
등에 건전지 박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때마다 배터리 충전하는 것도 아닌데 기껏해야 나무 열매나 곡식 알갱이나 남의 살코기 같은 거 좀 씹어넘긴다고 에너지가 막 생겨서 늙어 죽기 전까지 특별한 외부 감염이나 충격이 없으면 나름대로 계속 작동을 하는 이 말랑한 몸뚱이가 새삼스레 너무 신기하다.
어쩌다 우주의 많은 생명 중 인간으로 태어나 다른 동식물은 굳이 신기해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신기해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참 신기하다. 자연의 선물일까.
세 개의 자투리 글을 이어 붙인 이 글은 조각보와 같다.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발견된 작은 감성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하나의 이야기 보자기로 만들어 본 것이다. 옷을 짓고 남은 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는 - 우연과 감각, 실용과 절약, 무엇보다 자투리 하나도 그냥 버리지 않고 소중히 대하는 겸허로써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생활의 예술이다. 이루어야 할 목표에 정신이 팔려 무심히 놓치고만 감성의 자투리들을 주워다가 조각보를 만드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복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의 조각보가 곧 복주머니다. 엘리베이터의 그도, 텔레마케터인 그녀도 몸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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