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다리 아래서 노숙인지원센터가 응급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
집에 가려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오후 11시 30분 대전역 지하차도 이곳저곳에 담요더미가 소복히 쌓여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 또는 통로 한켠에 이불더미는 “못 본 척 지나가셔도 됩니다”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듯 발걸음에 방해되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대전시 노숙인종합지원센터 김광현 팀장은 그런 이불더미를 하나씩 들춘다. 온기라곤 없을 것 같던 더미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집이다. 가지런히 놓인 신발이 있고 작은 가방이나 보따리가 옆에 있으며 그 안에서 누군가 휴식을 갖는다.
김 팀장이 들춘 작은 집에 인기척이 있다. 김 팀장은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노숙시민과 눈을 마주치고 얼굴 안색을 살피고 덮은 이불은 얼마나 따뜻한지 손을 넣어보고 이내 말을 건넨다.
“저녁은 드셨어요? 간단한 요깃거리 가져왔으니 잠시 앉아서 드시고 주무세요”
온장고에서 방금 꺼낸 두유와 김밥을 건네고 그 옆에 작은집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먼저 소화제가 있으면 달라고 요청해왔다.
김 팀장은 등가방을 풀어 구급상자서 소화제를 꺼낸다.
“지난번에도 소화제 달라고 하시더니 배가 자주 불편하신가 봐요. 그러지 말고 우리 센터로 오세요. 어디가 아픈지 도와드릴 테니까요”김 팀장이 신신당부했다.
역전지하상가에서 대략 7명의 노숙시민의 안전을 확인한 뒤 대전천 일원 다다리 밑으로장소를 옮겼다.
대전노숙인지원센터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노숙인을 찾아가고 있다. |
김 팀장은 이번에도 노숙시민을 살짝 흔들어 깨워 안색을 살펴 혹시 술에 취한 건 아닌지 먼저 가늠했다. 추운 겨울에 일시적 술기운에 잠들었다가 동상을 입거나 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에서 술기운은 느껴지지 않았고 이곳에서 계속 자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쳐 두유와 김밥 그리고 추위를 잠시 녹일 수 있는 핫팩을 건넸다. 언제든 실내서 잠을 잘 수 있는 긴급잠자리가 대전역 가까운 곳에 있지만, 이마저도 거부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이날처럼 응급구호활동이 전개된다. 또 다른 다리 밑에서도 시설입소 대신 노숙을 선택한 이에게 안부를 묻고 간단한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대전시 노숙인지원센터는 24시간 운영되는 곳으로 노숙시민들의 위험요소를 예방하고 재활을 돕고 있다. 2004년 대전역 앞에서 개소해 상담사·사회복지사 등 직원 10여 명이 상주하는데 하루 평균 50~100여 명의 노숙시민이 이곳을 찾고 있다. 요즘처럼 겨울철에는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많게는 하루 3회 응급구호 현장활동을 벌인다. 아웃리치라고 불리는 응급구호활동은 노숙시민이 모이는 곳이나 민원이 접수된 곳을 찾아 상담과 의료지원, 시설안내 등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노숙인지원센터의 부대시설로 일시보호센터를 운영 중인데 노숙시민은 언제든 실내에서 잘 수 있는 응급잠자리와 건강검진을 제공하고 재활상담을 진행한다. 남녀 분리된 공간으로 마련됐는데 아웃리치에서 만난 노숙시민들에게 응급잠자리 이용을 권유하며 재활의 길을 소개한다. 재활을 통해 탈 노숙하는 경우에는 주거지원까지 진행하는데 신규 노숙시민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대전권에서는 지하상가, 역대합실, 다리 밑, 공원 등에 노숙시민 150여 명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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