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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에 땀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 역시 물이 귀한 지역이라 물통 하나를 샤워용으로 준비해 준다. 이미 중국인 습관이 몸에 배였기에 먼저 수건에 물을 적셔 땀을 닦아내고, 두 번째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것으로 샤워는 끝이다.
저녁식사는 삶은 감자 먹기다.
이 집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촌장 내외와 아들 내외가 빙 둘러 앉아 감자를 먹는다. 감자를 먹다가 목이 메인다. 50년대 60년대까지 우리들도 이러했다.
6.25를 만나 남쪽으로 피난길을 떠나야 했던 필자의 어린시절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목이 메어왔다.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찮아도 보릿고개라 해서 고난의 춘궁기를 보내야했던 소년시절.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낯설고 물선 이국땅 소수민족 촌에 와서 다시 옛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것처럼.
가난이 무엇인지, 잘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조차 개의치 않는 소수민족들을 보며 느끼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저녁식사 대신 감자 몇 알로 만족하면서 낄낄 깔깔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식구들은 웃음꽃을 피운다. 감자로 포식을 한 후 촌장이 마실을 나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마을에서도 한 쪽 끝자락에 있는 집으로 들어선다.
그냥 이웃에 놀러 가자는 것이 아니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미 그곳에는 십여 명의 남자들이 닭을 잡아놓고 술상을 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면서 악수를 하고 또 어떤 이는 와락 껴안기도 했다. 그들이 권하는 술은 미주(米酒)라 했다.
우리나라 농촌의 막걸리라고 생각하면 딱 들어맞는 술이다. 알콜 도수는 10도 안밖으로 심심하긴 했지만 몇 순 배 들고나니 얼큰해 온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기는 서로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은 막힘이 없다.
#아들 내외의 운우지정(雲雨之情)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인이 아닌 중국의 또 다른 먼 지역에서 온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촌장의 얘기로는 오늘 필자를 대접하기 위해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추렴을 했다고 한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일행들의 취흥이 무르익어 갈 무렵에 밖에서부터 왁자지껄하더니 대 여섯 명의 사나이들이 몰려왔다. 출장을 갔던 鎭長 일행이었다. 뒤늦게 필자의 도착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면서 반가워한다. 그들은 빈 손으로 오지 않고 이 지역에서 귀하다는 백주(白酒) 몇 병을 들고 왔다. 미주(米酒)를 마신 뒤에 백주(白酒)를 집어넣으니 금새 아리딸딸해진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술잔이 날아온다.
鎭長이 필자를 소개하는데, 아마 景洪市 정부에서 대충 얘기를 해 준 모양이다.
한국이란 나라는 아주 부자나라이고, 이 사람은 그 부자나라에서 온 귀한 분이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인데,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람이다. (이 대목에서 유명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 또 강조하는 바람에 민망스러웠다.) 여러분들은 손님이 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환대해 주기 바라며 건강하게 있다가 편히 돌아갈 수 있도록···등등 신신당부까지 한다. 자기들은 평생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면서 박수 또 박수 그리고 술잔 돌리기로 이어진다.
鎭長의 한마디가 꽤나 영향력이 있나보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부락사람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다. 하나같이 먹을 것을 들고.
옥수수, 과일 종류, 普?茶, 감자, 술 등등 촌장내외는 입이 늘어나 귀에 가 붙어버릴 정도다.
악취미 같은 얘기지만 어젯밤 얘기를 혼자만 알고 넘어갈 수가 없다.
술에 취해 촌장과 돌아왔고, 그가 안내한 침상에 가서 그냥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오줌통이 터질 것 같은 압박감에 잠에서 깨어 났다.
아무리 봐도 컴컴 캄캄한 사위 속에 어디로 나가 소변을 봐야 할 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바로 옆 침대에서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다.
아들 내외였다. 18세, 16세의 부부가 저렇듯 격렬한 밤일을 즐기다니!
그 바로 옆 침대는 그들의 부모가 있고, 또 옆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가. 소리를 지르다가 울다가 16세 어린 신부의 감창(感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들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지척간에서 느끼고 있을 어르신들의 감흥은 또 어떠한 것일까.
참 재밌다. 재밌어.
촌장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난 후 이 집에선 더 이상 머무르기가 싫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들 내외의 표정을 보니 아무렇지도 않다.
특히 16세 어린 신부는 깜찍하기만 했다. 지난 밤 그토록 요란하게 괴성을 지르며 운우지정을 나눈 사람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필자가 이상한 사람인가?!
촌장 내외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여전한 모습, 태도일 뿐이다. 오늘은 이곳 중학교를 가보기로 한 날이다.
중학교 교장이 한국인이 온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다가 부탁을 해오더란다. 중3 교실에 필자를 초대하여 학생들과 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처음에는 언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정중히 거절을 했지만, 서툴러도 좋고 또 간단한 영어는 학생들이 알아듣는다고 해서 억지승낙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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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데 모두 한 학년이 한 학급씩뿐이고, 학생 수도 학년당 20명을 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하니 교장선생과 또 한 명의 여선생이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긴다.
鎭長과 副鎭長이 같이 동행한 상태였다.
교장선생 옆에 서있는 여선생은 알맞은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이었는데 커다란 눈망울을 한 미인이다.
소수민족 뿌랑족(布朗族)은 검둥이까지는 안 가더라도 남여 모두가 까무잡잡한 피부색이다.
이들 민족 가운데 저런 미인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이름은 玉叫?. 알고 보니 필자가 들어가기로 한 중3교실의 담임선생이었다.
떠들석하던 교실에 우리 일행들이 들어가자 순간적으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교장선생이 먼저 단위에 올라 한참을 얘기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인데 유명한 작가 선생님이니 말씀 잘 듣기 바란다는 요지의 훈화인 것 같았다. 그 다음은 鎭長이 나서서 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이어서 담임선생이 또 단위에 올라 같은 이야기를 끝내고서야 필자의 차례가 왔다.
아이들은 킥킥 웃기도 하고 옆 자리 친구들에게 무슨 얘긴가 소곤거리기도 하면서 시선은 일제히 필자를 향하고 있다.
중국어 영어를 뒤섞어가며 간단히 여기에 온 목적을 얘기했더니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질문이 쏟아져 들어온다. 맑고 밝은 청소년들이었다. 또한 놀란 것은 그들의 영어실력이다. 운남성에서도 벽촌 중에 벽촌인 이곳 布朗山 계곡의 조그만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에 가까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영어로 질문을 해오는데 발음도 대단하다. 한 시간동안 진땀을 뺏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나중에 안 얘기지만 한 달 전 까지만해도 필리핀 영어선생이 무려 4년간이나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필리핀 선생은 평소엔 자애로우면서도 영어학습만큼은 호랑이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섭게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이는 교장선생의 특별 배려가 힘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교장선생은 같은 뿌랑족으로 유일하게 대학교(운남 대학)를 졸업한 재원인데 좋은 직장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평교사생활을 시작, 8년 만인 5년 전에 교장이 되었다고 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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