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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산성에서 내려다본 주변 교통로/사진=조영연 |
험산들 사이에 곡간에는 영강 줄기 수로가 구곡양장(九曲羊腸)처럼 휘돌아 하늘재 밑까지 들어간다.
고모산성(일명 할미성)은 영남에서의 북진의 마지막 거점이 되는 성이다. 조효식은 신라성의 특징 중 하나를 거점성 중심으로 운영으로 보고 삼년산성, 금돌성과 더불어 5, 6세기 신라의 북진 거점으로 이 산성을 꼽고 있다. 오정산(812m)과 어룡산(617m) 사이 협곡으로 굽이져 흐르는 영강변에 위치한 산성은 북봉(231m)과 남봉(193m) 사이 넓고 펑퍼짐하면서도 약간 계곡진 안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포곡식으로 보기도 함)이다. 둘레는 약 1.6km(동벽 345, 북벽 300, 서벽 375, 남벽 280m로 평면도상으로는 동벽이 약간 안쪽으로 만곡했지만 남쪽이 약간 좁고 모서리가 원만한 남북 장방형에 가깝다. 지형상 동쪽으로 기울어진 서북고 동남저다. 안부의 서쪽 계곡에는 쌍으로 된 수구가 있고, 수구 내측 삼각형 평탄지는 다른 성들처럼 집수지나 저수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 서, 남벽은 대부분 높이 5m 정도로 복원됐으나 복원되지 않은 동벽 일부가 붕괴된 채로 남아서 성의 원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부분을 통해서는 대체적으로 협축을 중심으로 하고 절벽 위의 서, 북벽은 삭토 후 편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치성(개축 후 곡성)부가 있다. 사방에 문지가 하나씩 있는데 남문지는 현문식으로 복원됐다. 서문지 지하 부근에서 남북 약 12×동서 약 7×높이 약 5m 가량의 목조 지하 시설이 확인돼 창고나 저수지 혹은 지하 요새로 사용되지 않았나 추정한다. 성내에서는 삼국시대 토기와 기와편들이 발굴됐다 한다. 성에서는 동남쪽 석현성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신라 아달라왕(156년) 때 계립령을 개척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역사 지리적 비중에 비춰 볼 때 최소한 2C 무렵에는 어떤 형태로든 관방시설로 축조돼 그 후 증개축하여 임진란 때까지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성을 일명 할미성이라 하는 데 이는 원래 그 고유의 명칭을 한자음화하는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강변 따라 남쪽에서 올라온 길은 불정고개 넘어 100여 미터 절벽길은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큼 좁을 뿐더러 수십길 낭떠러지 아래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르다. 이 길이 바로 속칭 토끼비리(兎遷)다. 오랜 동안 사람들의 통행으로 울퉁불퉁한 바닥이 닳고 닳아 반들반들 윤이 나고 빛깔도 거의 오석에 가까울 정도로 시커매졌다. 이 길을 벗어나면 돌고개(석현) 진남루로 들어가 주막거리에 다다른다. 현재는 주막집, 성황당과 당집 등이 복원됐다. 옛날에는 떡집도 있어 찰떡거리라고도 불렀다 한다. 이 토끼비리길은 영남땅에서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향하던 수많은 선비들과 장똘뱅이들이 오가며 주막에서 하룻밤 묵거나 땀을 식혀 갔고 성황당과 당집에서 안전과 행운을 빌고 또 빌었으리라. 장사꾼들은 아마 과거보러 가는 이들에게 이 떡을 먹어야 찰떡처럼 과거에 찰싹 붙을 수 있다고 꼬득였을 것이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흥겨워서 한 잔, 풀 죽은 낙방꾼들은 시름을 풀려고 한 잔 거나하게 푸고 하염없이 토끼비리 미끄런 길로 사라졌으리라. 한때는 노다지꿈에 부풀어 광산으로 향하던 이들의 발걸음도 잠시 멈췄다.
등짐 가득 부(富)를 꿈꾸며 오가던 장사꾼들도, 청운의 꿈을 안고 오가던 선비들도, 영강나루 뱃사공들의 뱃소리도 다 사라진 이제는 진남문 밖 폐철도에서 레일바크 타는 부녀자와 아이들의 재잘거림, 관광객들의 흥겨움, 자동차들의 붕붕거리는 소리들이 첩첩산중의 고요를 깬다.
찰떡거리 안쪽 성황당 옆 당집에는 고개를 지키던 어여쁜 처자와 선비 나그네 사이의 애틋한 로맨스 담긴 전설이 깃들었다. 과거보러 가던 길에 하룻밤 연을 맺고 떠난 한 선비가 뒤늦게사 처녀의 죽어 구렁이가 된 원혼을 풀어준다는 이야기다.
고모산성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건너편 어룡산 줄기 병풍과 반달처럼 만곡한 이쪽 오정산 끝자락 사이 복어 같은 분지. 속세를 벗어난 그 안 진남 유원지가 바구니 속처럼 아늑하다. 속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강, 햇살에 반사돼 눈부신 모래사장, 그 옆 잘 정리된 약간의 푸른 밭과 나무들, 틈틈이 자리잡은 앙증맞은 하얀 집들 몇 채, 동네를 오가는 오솔길이 녹색 전원 속에서 유난히 하얗다. 활등처럼 둥그런 마을 뒤편 산기슭 따라 새로 난 국도와 초라하게 주눅든 구도로, 한때 부를 싣고 기적소리 우렁차게 지축을 울리다 지금은 레일바이크로 겨우 연명해 가는 문경선 폐철도들이 그래도 형동생인 듯 다정히 산성 앞 다리 건너 멀리 북을 향해 어깨동무 하고 사라진다. 영강의 맑은 물굽이가 토끼비리 낭떠러지 밑을 교태를 부리는 여인처럼 긴 치맛자락을 끌고 살풋이 진남문 앞 절벽을 씻기면서 소백산 하늘재를 찾아간다. 정물화 소품처럼 아기자기한 200m 아래 진남교반 풍경이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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