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다음날 자유한국당의 초선의원들과 개헌특위위원들이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같은 이유로 "개헌없이 지방분권을 이룰 수 없다는 주장은 완벽한 거짓말"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먼저 정 의원이 행자부 장관으로 있을 때 지방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유하혜가 현명한 사람인 것을 알고도 천거를 하지 않고 자신은 무능하여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노나라의 재상인 장문중을 가리켜 절위자(竊位者)라고 했다. 즉 벼슬도둑이라고 심하게 욕을 했다.
정 의원과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지방분권은 이른바 집행기능을 지방에 넘기는 행정적 분권이다. 중앙정부가 법령으로 설계한 획일적인 정책을 지방정부에게 지방정부가 집행하도록 이양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지방분권은 지방정부를 자율적인 정책기관이 아니라 하급집행기관으로 생각하는 수준이다. 오늘날 시대가 요구하는 지방분권은 정치적 분권이다. 지방정책을 지방정부가 자기책임하에 결정하고 그 결과를 감수하는 자기책임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60년대나 70년대의 산업화과정에서 중앙정부가 선진국모델을 정답으로 정하고 전국적으로 획일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집행하는 조국근대화식 국가모델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학자인 토플러는 이러한 중앙집권적인 체제는 산업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작동할 수 있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작동할 수 없는 낡은 시스템이라고 했다. 지식정보사회는 정답이 없는 사회이고, 정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으려면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정답을 찾느라 나서면 잘못되면 전국이 피해를 보게 된다.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이에 지방이 나서서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 지방발전과 지방이 국가발전을 위한 혁신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에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손발을 풀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헌법은 지방이 이러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지방정부의 손발에 족쇄를 채워놓고 있다. 현행헌법은 지방정부에게 중앙정부가 시키는 것만 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명하고 있다.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는 법률에 정한 경우에만 하고,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활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헌법은 법률제정권을 국회에 독점시키고 있다. 그런데 국회가 정한 법률이나 명령은 지방 실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질병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모든 환자에게 획일적으로 아스피린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 중앙정부의 지역발전정책, 부동산정책, 교육정책, 각종 안전대책 등이 실패하는 이유이다. 즉, 중앙정부는 지방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정답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발전정책은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지방은 하급기관처럼 중앙정부가 정해놓은 정책을 시키는 것만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것이다. 헌법은 지방정부가 지역발전을 위해 나서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아래로부터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고 국가의 경쟁력은 떨어져 경제가 활력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다.
지역경쟁력을 높이고 아래로부터 혁신을 통해 국가발전을 가져오기 위해서 헌법이 지방 정부에게 채워놓은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그래서 지방분권개헌이 필요하다. 헌법개정이 아니면 풀 수 없는 과제다. 이는 주민의 삶의 문제이고, 주민생존의 문제이다. 헌법개정을 통해서 지방정부의 손발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 행복도 증진되고, 실업문제도 해소되고, 주민의 살림살이도 윤택해질 수 있다.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은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철회하고 겸손한 자세로 시대적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중앙집권적 낡은 헌법이 지방을 망치고 나라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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