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한국으로 보냈다. 네덜란드의 겨울도 깊어갔다. 곧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한해도 저물어가던 12월 어느 날 새벽에 쉬뢰더는 침대에서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꿈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튜라플리네스를 보았다.
꿈속에서라도 보기를 갈망하던 그 꽃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마치 아리따운 여인처럼 자신의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는 튤립이에요, 아니에요, 저는 백합이에요, 아니에요 저는 네펜데스랍니다. 아니에요, 그것도 아니에요.'
쉬뢰더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날 오후 박원순연구원과 드미트리는 며칠 밤을 새운 지친 얼굴로 쉬뢰더의 연구실문을 박차며 뛰어 들어왔다.
"성공입니다, 성공이요!"
그들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수없는 시도 끝에 드디어 생체마이크로웨이브 장치를 활용해 튜라플리네스 합성에 성공한 것이다.
쉬뢰더는 마치 새 생명을 탄생시킨 것처럼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22세기 미래연구소'에 그는 아낌없는 후원을 하기로 하였다. 동시에 라이덴 연구소의 모든 장비와 연구원들을 공유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박원순 연구원은 쉬뢰더의 제안을 즉시 한국의 방휘곤 원장에게 보고했다.
쉬뢰더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시험관 샤아레(schale)에서 자라고 있는 튜라플리네스의 배아를 관찰하는 일이 낙이었다.
식충식물이라고 하지만, 순수한 식물만의 유전자는 아니다. 튜라플리네스는 동물적 유전인자도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면 소화시키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동시에 광합성을 통한 자기 생장도 가능하다. 그런 만큼 개화기간이 다른 꽃과는 비교가 안 되게 길 것이다.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가리라고 예측되고 있다.
배설도 하는가?
쉬뢰더는 새로운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비밀스런 기능에 대해 하나하나 체크해가면서 꽃의 향기와 성장속도 등 모든 것을 기록하며 하루가 24시간 밖에 안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꽃의 성장속도는 다른 것보다 두 배 이상 빨랐다. 광합성을 하는 동시에 고기국물을 매일 비료와 같이 주기 때문이다.
향기 또한 남달랐다. 막 개화하기 시작한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이 향기는 무슨 향일까 하고 쉬뢰더는 상상했다. 만일 이 향으로 향수를 만든다면 세계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그리며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향은 독특하고 자극적이었다. 이러한 향기가 야외에서는 어떤 곤충을 유인할까?
쉬뢰더는 분명히 벌과 나비 뿐만은 아니리라고 믿었다. 꿀을 만들어 수분을 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향기는 곤충을 포획하기 위한 함정과 같은 것이다. 곤충들에게 죽음을 부르는 매혹적인 향기인 것이다.
튜라플리네스로 제조한 향수는 어떤 마력을 발산할까? 쉬뢰더의 상상은 끝이 없었다. 그 만큼 기대도 커져갔다.
튜라플리네스의 독특한 향기를 매일 체크하는 가운데 쉬뢰더는 그 향기의 마력이 꽃보다는 줄기에서 더 짙게 나오는 사실을 발견했다. 꽃에서도 물론 향이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튜라플리네스는 온몸에서 향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배양을 거쳐 튜라플리네스는 이제 연구소의 모든 샤아레와 화분을 차지하며 자라고 있었다. 쉬뢰더는 연구실 전체를 튜라플리네스의 향으로 가득 채우며 즐겼다.
쉬뢰더는 자신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튜라플리네스와 함께 대망의 새해를 맞을 기쁨에 미리 취해 있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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